상담 에세이

 

상담가  임옥순

                   

산딸기가 들려주는 애절하고 소중한 이야기 

 

산길을 따라 붉게 익어가는 산딸기를 보니 “오나라 오나라 아주 오나/가나라 가나라 아주 가나/나나니 나려도 못노나니”라는 드라마 대장금의 주제곡 가락이 귓가에 들려오며 궁중궁궐이 오버랩 된다. 대비 마마 생신 축하연 및 최고 수라간 상궁을 뽑는 어선 경연대회 장면에서 장금이가 최고의 음식으로 산딸기정과를 만들게 된 슬프고도 깊은 사연의 대사가 떠올라 가슴이 싸하게 아려오며 눈물이 핑 돈다.

“중전: 이것이 최고의 음식인 이유가 무엇이냐?

장금이: 산딸기는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 제가 마지막으로 먹여드린 음식입니다. 다치신 채 아무 것도 드시지 못한 어머니가 너무도 걱정스러워 산딸기를 따… 혹 편찮으신 어머니가 드시지 못할까 씹어서 어머니의 입에 넣어드렸습니다. 어머니께서는 그런 저의 마지막 음식을 드시고 미소로 화답하시고는 떠나셨습니다.

중종 : 맛있구나! 너를 두고 가셨을 어머니의 마음을 잊지 않겠다. 홀로 남아 어찌 살아갈까 노심초사했을 네 어머니의 마음을 잊지 않고 정사를 펼치겠노라! 산딸기는 내게도 최고의 음식이다! 또한 너는 조선 최고의 수라간 궁녀다!”

 

내게는 장금이에게 일어났던 산딸기에 얽힌 사연만큼 깊지는 않지만, 그러나 이번 여름에 자주 마주치는 산딸기를 볼 때마다 저절로 손이 가고, 언제 먹어도 친숙한 맛이다. 마치 내게 크림치즈보다 호떡이, 호빵이 더 맛이 있듯이 어떤 과일보다도 산딸기는 정 깊은 맛이 있다. 문득 마켓에서 시장을 보고 있는데 어느 연세 많으신 할머니가 호박을 집으면서 하신 말씀이 기억난다. “호박만 보면 마술에 걸린 듯 집어 든다니까!” 가난했던 시절, 먹을 거리가 별로 없던 어린 시절 호박으로 무침도 만들고, 된장찌개도 끓이고, 호박떡도 만들어 주시던 어머니의 손맛이기에 이제 어머니가 되고, 할머니가 된 지금도 호박만 보면 자신도 모르게 시장바구니에 넣게 되는 당신의 모습을 보면서 한 말씀이리라.

 

사람들 마다 마음속에는 산딸기, 호박과 같이 최고의 음식이 자리 잡고 있듯이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아름다운 이야기든 또는 슬픈 이야기든 자기만의 의미와 가치를 지닌 단어들이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그런 단어들은 그의 삶의 선택과 목적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

 

산해진미 가득한 수라상을 받는 임금에게 산딸기정과는 드릴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장금이에게 산딸기는 어머니를 살리려는 그녀의 마지막 애절한 노력이었다. 그렇기에 산딸기는 장금이에게 최고의 음식일 수 밖에 없었다. 산딸기는 그녀의 마음 깊은 곳에 생명과 연결된 단어, 어머니를 생각나게 하는 단어, 죽음을 생각나게 하는 단어, 그래서 기어코 살아남아야 하는 이유인 단어 였다. 장금이에게 산딸기라는 단어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깊고 슬픈 의미를 지닌 그녀의 존재를 담은 단어였다. 그녀는 산딸기를 보는 순간 마음에서는 형용할 수 없는 슬픔과 그리움, 그리고 살아남아 최고 상궁이 되어야 한다는 생의 의지가 솟아났을 것이다. 보잘것없는 산열매, 유월이면 지천에 널려 있는 작고 앙증맞은 산열매를 나타내는 단어였겠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그저 무심히 지나 칠 단어였을지 모르지만 장금이에게는 그의 생애를 움직이는 단어였을 것이다.

 

상담가에게 무의미하게 혹은 하찮게 들리는 내담자의 말이 내담자에게는 생명과 같은 소중한 말일 수 있다. 상담가를 찾는 내담자들에게는 각자의 산딸기가 있다. 각자의 마음속 깊이 잠겨 있는 그 단어! 꼭꼭 숨겨둔 단어, 억압했던 단어, 입에 올리기 힘들었던 단어, 자신조차도 속여 버린 단어들…. 그렇기에 내담자의 아픔과 슬픔이 몽땅 담겨 있는 단어를 찾아내는 작업이 중요하고, 경청이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산해 진미에 맛들인 임금님이 산딸기에서 맛을 찾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작업일 수 있다. 그러나 내담자의 말 속에서 아픔과 상처를 풀어낼 수 있는 단어를 찾게 되면 쉽게 아픔과 상처에서 회복될 수 있는 길을 찾게 된다.

 

지속적으로 쌓인 적개심을 마음에 품고 표현하지 못해 화가 난 상태, 우울하거나 불안하거나 강박적인 마음을 담은 단어가 있다. 내게 아픔과 고통을 호소하는 분들의 사연들 속에는 자신을 받아주지 않고, 알아주지 않고, 인정해 주지 않고, 사랑해 주지 않아서 섭섭하고 억울하고 답답한 마음이 뒤틀려 버리게 한 사건, 그리고 그 감정을 몽땅 담고 있는 그 단어, 억압한 적개심을 품고 있는 단어, 혹은 슬픔을 담고 있는 단어를 상담가는 찾아야 한다. 하이데거의 말처럼 내담자 존재를 담고 있는 언어, 단어를 찾아야만 한다.

 

자신의 형편을 누구에게도 털어 놓지 못하고 불안이 심했던 분과 이야기를 나누면서“부모가 인정해주지 않아서 화가 난 마음을 참으셨군요.”라고 말씀 드렸더니, “아~아!” “그 ‘인정’이라는 말이 딱 맞네요. 그러고 보니 아주 어릴 때부터 나를 인정해 주실 부모님이 곁에 계시지 않았어요. 우등생 성적표를 들고도 달려가 보여드릴 부모님이 가까이 계시지 않았어요. 그래서 학생들이 다 빠져나간 넓은 운동장에 가끔 혼자 서 있었던 기억이 나요. 으쓱해 하는 나의 자랑을 반겨주고 인정해줄 부모가 곁에 없었어요. 돌보아 주는 친척은 나에 대해서 아무런 관심도 없었고요. 나를 거추장스럽고 귀찮은 존재로 여기는 그들에게 성적표를 감히 보여드릴 수가 있었어야지요.”살아오면서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갈급했는지를 이제야 알 것 같다 하셨다. 지금도 여전히 상담가에게 까지도 인정받고 싶어 행동하는 자신을 보게 된다며 쓴 웃음을 지어 보이시던 분이 생각난다.

 

몇 해 전 나를 무척이나 힘들게 했던 “결핍”이라는 단어가 가져다 준 충격 때문에 몇 일 동안은 잠을 뒤척이며 몸부림 쳤던 기억이 생생하다. 상담 훈련과정에서 상담가가 내게 결핍 이라는 단어를 표현할 때 다른 말들은 들리지 않고 그저 머리를 얻어맞은 듯 멍했었다. 위장이 파르르 진동하면서 머릿속이 텅 빈 듯 했었다. 점점 시간이 흐르면서 결핍이라는 단어는 나를 몹시 당황스럽게 만들었고, 창피하게 만들었다. 우리 엄마가 나를 방치할 분도 아니고, 항상 곁에서 보살펴 주셨고, 먹여 주시고 아껴주셨는데…. “결핍?“이라니…    

 

 갑자기 엄마한테 미안한 마음이 먼저 들었다. 결국에는 사랑이 부족했기에 나에게 결핍감을 느끼게 했다는 그 책임을 드리고 싶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그러나 실컷 아파하고 가슴앓이를 하고 나니 서서히 감기 기운이 빠져 나가듯이 몸도 마음도 가벼워지면서 차분해지기 시작했다. 결핍이라는 의미를 나름대로 이해하고 깨달으면서 인정을 하게 되었다. 그 이후부터 나를 더 객관적으로 보는 눈이 생기게 되고, 결핍감으로 인한 내 마음의 역동을 좀 더 진지하게 들여다보게 되었다. 나의 상처가 창피해서 감추거나 포장하지 않을 용기도 생기고 긴장도 덜 해지기 시작했다. 세상의 모든 엄마는 전지전능 할 수가 없다. 최선을 다해서 돌보지만 아이는 어느 순간 수가 틀리면 화를 내고 분해하고 슬퍼하고 끊임없이 매달리며 채워달라고 보챈다. 딸이 많은 가정에서 셋째로 태어나 위로 언니들, 밑으로 있는 동생들 틈새에서 생존하기 위해 얼마나 힘 들었을까…나름대로 내 안에 박혀 있는 결핍이라는 단어, 나의 다른 분신, 결핍은 성장과 성숙을 향해 겸손하게 하기도 하고, 정서적인 긴장을 풀어주는 자극제가 되어주기도 한다. 그러면서 상담소에서 만나는 분들이나 가까이에서 관계하는 분들을 이해하는 중요한 깨달음이 되어 주기도 하고….

 

산길을 걸으며 산딸기를 입안에 한 개 두 개 넣고 깨물어 보았다. 내가 그때 먹었던 산딸기 맛은 아니었지만, 마음은 벌써 어느 선선한 여름 해질 무렵에 따 먹었던 산딸기 맛으로 입안에 침이 가득 고이면서 갑자기 조국 고향에 계시는 어머니와 함께 산딸기를 따 먹었던 산기슭 텃밭으로 가고 싶어졌다. 항상 엄마와 둘이 있을 때는 바라는 것이 많아 투정부리고 채근 대며 조르기 일쑤였다. 친구가 입은 유행 옷 사달라, 아니면 참고서적인 전과와 수련장을 사달라, 소풍 갈 때 선생님 도시락 싸달라, 학교에서 환경정리를 하는데 엄마 도움이 필요하다 등등… 선선한 여름 해질 무렵에 저녁 반찬거리를 준비하시기 위해 밭으로 나설 때 쪼르르 뒤 따라 가면서 밭두렁과 언덕배기에 빨갛게 익은 산딸기를 옹골지게 따 먹으며 그 날도 보챘었다. 엄마 손은 오이, 고추, 가지를 따시고 귀로는 내 투정을 들으시며 알았다는 말씀이 떨어질 때 따 먹은 산딸기는 만족스러운 맛으로 남았던 것 같다.

 

경청은 타인의 관점과 해석의 가치를 인정하고, 가치의 차이를 환영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한다. 상담가가 내담자의 자리에 앉아 듣고 같이 울고 웃을 때에 비로소 회복의 길로 들어간다. 수라간 나인의 산딸기에 얽힌 사연의 의미와 가치를 인정하고, 환영하고 받아들여 조선 최고의 수라간 궁녀라고 선언하는 중종 모습에서 경청의 의미를 한 번 생각해본다. 임금이 궁녀의 마음을 헤아리기 결코 쉽지 않은 일인데 말이다. 임금이 수라간 궁녀의 자리에 내려가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인데 말이다. 경청! 임금과 수라간 나인만큼이나 먼 거리를 좁히는 일이라 늘 어렵다. 이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는 머리와 마음 사이라는데… 내 머리와 마음 사이가 그렇게 먼데,,,, 상담가의 마음과 내담자 마음의 거리는 또 얼마나 멀까….. 그렇지만 서로 교제하게 하시는 성령님을 의지하며 오늘도Family Touch로 향한다. 인간을 온전히 사랑하기 위해서 인간의 몸을 입으신 주님처럼 내담자의 마음속에 있는 산딸기 맛을 느낄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산딸기 하나를 입에 넣고 사르르 눈을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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