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 에세이

 

상담가  임옥순

                   

봄을 빼앗긴 이들과 냉이국을 나누며    

 

길고 우울한 겨울을 헤치고 봄이 왔지만 창문을 열고 봄을 껴안을 수 없는 이들이 있다. 친정 어머니 본 듯 반갑게 찾아 온 봄을 마음 가득 느끼며 봄을 빼앗긴 이들과 냉이 국을 나누며 봄의 따스함을 함께 나누고 싶다.

 

내 마음을 들썩거리게 하는 봄의 친구들이 몰려와 다정하게 말을 걸어온다. 닫히고 얼어붙은 마음 달래주려 오랫동안 마음속에 머물러 있던 정다운 기억들이 봄기운과 함께 내 손을 잡아 끌며 봄이 깃든 들녘 구석구석으로 데려간다.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 아지랑이 따라 자유롭게 들과 밭을 거닐다 눈 마주 쳤던 봄 친구들과 우리들만의 비밀 보따리를 풀어 놓고 실컷 키득거렸다. 그 때 자그마한 소쿠리에 가득 담아 놓았던 냉이라는 친구가 즐거운 저녁식탁까지 따라 오며 말을 건넨다. 지난겨울을 견디며 맺혔던 못 다한 이야기가 많았나 보다.

 

상담가로 훈련 받으면서 나는 봄을 새롭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정신치료란 언 땅 위에서 떨고 있는 생명에게 따뜻한 봄을 가져다 주는 것이다. 봄은 상담가에게서 우러나는 하나님의 은총이며, 환자는 하나님의 은총을 느낌으로써, 마음에 봄이 오면 편안해지고 즐거움이 살아나 건강을 회복하게 한다.”는 정신 치료가의 말씀을 대하고부터 이다.

 

이번 봄에도 얼어붙은 마음으로 찾아왔다가 봄을 찾아가는 이들을 생각해 본다. 때론 말이 필요 없는 대화, 곁에 있어만 주어도 가까이서 봄을 느끼는 듯 그들은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사실에 용기를 얻어 마음속의 아픔을 어렵게 풀어놓는다. 아니 너무 고통스러워서 토해내지 못한 울음이 목에 걸려 얼굴이 일그러지며 겨우겨우 통곡의 목소리와 함께 눈물이 흘러내린다. 아직도 엄마와 풀지 못한 응어리를 안고 테이블 위에 놓인 화장지를 한 주먹 쥐고 나가는 뒷모습이 가슴 아프게 한다. 너무 아프고 기억조차 하기 싫어서 새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잊힌 게 아니라며… 오히려 더 밝게, 더 당차게, 더 활달한 모습을 보이려고 꼭꼭 감추고 숨겨 자신도 모른 채 살았지만, 이제는 멍든 가슴을 감출 수도 없고, 돌 같은 응어리가 쿡쿡 쑤시는 아픔을 견디어 낼 수도 없다고 한다. 처음으로 기억나는 아픔을 조각조각 끄집어내려 하니 입술이 떨리고 가슴이 떨려 한참을 진정시킨다. 울음을 터뜨리기조차 힘들어 고통스러워 하는 울부짖음은 원초적 신음이었다.

 

“우리 엄마는 저를 임신했을 때 기쁘지가 않았대요. 삶이 너무 힘들어서 어쩔 수 없이 낳아 젖 물리기에도 버거운 먹먹한 가슴으로 나를 안았겠지요? 그것도 모자라 저는 다른 형제와는 달리 늘 핀잔만 듣고 따돌림 당하고 밀쳐내고 자식 취급을 받지 못했지요. 엄마가 얼마나 괴로웠으면 저한테 손찌검을 했겠어요. 저는 엄마가 밉지가 않아요. 제 가슴이 미어지고 숨 쉬기도 힘 든 데도 말 이예요. 상처 난 엄마의 다리는 아팠나 봐요. 그런데 피나는 내 살갗은 아픈 상처가 아니라며 약을 발라주지 않았어요. 엄마가 참아 라 해서 참았어요. 나만 참으면 됐으니까요. 이해 할 수 없는 엄마가 밉지만 감히 입을 열 수가 없었어요.”

 

아기는 붙들어주고 안아주는 엄마의 따스한 품에서 자라야 하는데, 엄마의 젖가슴마저 싸늘하게 느끼면서부터 아이는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갈증 난 목구멍을 축이기 위해 얼마나 필사적으로 매달리기를 반복했을까? 제때에 입 안으로 젖이 흘러 들어오지 않고, 제때에 축축한 기저귀를 보송보송한 것으로 바꿔주지 않으면 부르르 입술을 떨면서 떼를 쓴다. 지속적으로 지체되는 것을 반복한다면 아이는 세상의 좋은 환경을 경험하기도 전에 마음의 시선이 뒤틀려버린다고 한다. 유아에게 최적의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할 엄마, 그리고 아빠, 아이를 돌보는 주위 분들의 무관심과 방치와 거절과 박탈로 인한 상처는 평생을 좌우하는 숙명이 된다는 것, 충분히 좋은 엄마(Enough Good Mother)라는 환경이 만들어지지 않아서 서로 아픔을 경험하는 것, 이 때 경험한 밑바닥에 깔려 있는 핵심적인 감정들이 평생을 힘들고 지치게 한다. 툭! 하면 걸려 넘어지게 하는 뿌리 깊은 상처, 엄마에 대한 화난 감정이 고스란히 흔적으로 남아 봄조차 차갑게 느끼게 한다.

 

같이 있어줌으로써 마음이 편해지고, 든든하고, 내가 치료해 주는 게 아니라‘함께 있다!’하는 사실만으로, 내가 뭘 해 주는 게 아니라 같이 생각하고, 같이 느껴 주는 것만으로 꽁꽁 언 마음은 서서히 풀리면서 봄은 그들 가까이서 기다릴 것이다. 창피하고, 유치하고, 두렵고 떨려 억눌렀던 적개심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더 이상 적개심의 하수인 노릇을 하지 않겠다며 하나님께서 창조한 아름다운 모습이 힘을 얻고 벅찬 싸움을 시작한다. 봄조차 빼앗긴 그들에게 봄을 느끼게 해주고자 하는 측은히 여기는 마음을 가득히 채우고 내 안에 하나님의 은총을 가득히 채워 봄이라는 따뜻한 위로의 마음을 느끼게 하고 싶다.

 

나 또한 몇 년 전 상담 훈련과 나 자신도 상담을 받는 과정에 있었을 때 이런 벅찬 싸움을 시작했다. 그 날은 너무 마음 아픈 일로 땅 위에 발을 딛기도 힘들어 하늘을 날아다니고 싶었던 기억, 상담을 받으러 가는데 그날은 어떤 말보다도 곁에 있기만 해도 감정이 토닥거려 질 것 같아 “선생님, 오늘은 상담소에 앉았다만 갈래요.”하고… 말을 하지 않아도 마음을 나눌 이가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빗장이 풀리곤 했다.

 

하루에 해야 할 일을 메모지에 적어가면서 매주 한 번씩 만나 우울증을 치료하는 가정 주부다. 보통 사람들은 거뜬하게 하는 일도 자신은 주저한다며 부끄러워하고 한심하다 하지만 그것까지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나니 할 수 있다는 용기가 생겨 만남이 기다려진단다. 아직도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올라오지만 식구들에게 직사포를 쏘지 않을 여유와 힘이 생겼다고 편안해 한다. 오랜만에 남편의 작업장에 가서 청소도 하고 책상 위의 물건도 정리하고, 주말에는 온 식구가 페인트칠을 하면서 옥신각신 다투기도 했다지만 내 귀에는 그 가정에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어느 날은 번들거리는 뽀얀 피부와 눈가에 미소까지 깃든 얼굴로 상담실에 들어서면서“봄이 오니까 기분이 달라지네요. 요즈음은 할 일도 많아져서 바빠요.”하고 먼저 건네는 말에, “봄은 왔지만 아무나 봄을 느낄까요? “라고 했더니 “그런가요.” 하면서 가볍게 자리에 앉았다. “아아!! 정말 봄을 느끼는구나.”이해인 시인의 표현이 생각난다. “봄이 오면 나는 … 또 하나의 창문을 마음에 달고 싶다.”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 창문을 달고 진달래도 보고, 목련도 보고, 종다리도 보고, 파란 하늘도 보도록 돕고 싶다.

 

내 곁에 머문 따스한 봄이 ‘내가 왔다.’고 이른 아침부터 또 찾아 와 나른한 몸을 톡톡 치며 미소를 보낸다. 그래도 뭉그적거리면 냉이 국을 코에 들이대며 정신이 바짝 들게 한다. 냉이 국 한 대접에 속이 후련하고, 온 몸에 따스한 온기까지 도니 커진 눈망울 속으로 비로소 들어오는 봄 친구들…. 이런 기억만으로도 위로가 되고 마음의 평안을 찾곤 한다. 나만이 누리는 하나의 치유 방법이라고 할까? 그래서 봄이면 그립고 서럽고 아프고 아쉽고 억울해서 눈물 흘리기도 하지만, 삶이 우스워 배꼽 한 번 잡고 어이없는 웃음으로 거뜬하게 웃어넘기기도 한다.

 

연한 냉이 한 소쿠리를 옆에 끼고 한 달음에 달려가 엄마 손에 들려주면 봄 향기 가득한 냉이 국 한 그릇이 저녁상에 올라 와 온 식구가 냉이 국물 맛과 봄 냄새에 취해 봄을 맞이했던 정겨운 모습들이 떠오른다. 그 때 먹었던 그 맛을 느낄 수 있는 냉이 국물 한 모금만 들이 마시면 답답하고 싸한 가슴이 후련하고 포근해 질 것 같은 추억의 봄을 맞고 싶다. 냉이 국 한 그릇을 함께 나누며 마음과 마음으로 만나고 싶다. 봄조차 빼앗겨, 미래조차 빼앗겼던 이들과 함께 내가 만난 찬란한 봄을, 아무도 빼앗을 수 없는, 빼앗겨서도 안 되는 따스한 봄을 느끼고 싶다. 이들과 함께 아직은 비틀거리지만, 온전한 봄이 오지는 않았지만 벅찬 가슴으로 이상화의 시를 노래하고 싶다.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이 봄도 봄을 빼앗긴 이들과 함께 울고 웃고 춤을 추러 family Touch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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