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 에세이

 

상담가  임옥순

                   

양파와 행복으로 가는 눈물      

 

올해는 매운 맛보다는 단맛이 진한 햇 양파를 즐겨 먹으면서 여름을 맞이했다. 어릴 때 먹어 본 그 담백함이 슬슬 입맛을 당겨 저녁 밥상에 자주 올려 놓는데 내 입맛만 즐거운 듯했다. 내 기억으로 더 달콤한 양파 속을 먹기 위해 한 겹씩 까다가 시원찮은 손 놀림으로 양파 몸 통만 너덜너덜 짓물러지고 톡 쏘는 매운맛에 눈물 흘리며 먹기를 포기하곤 했었던 양파…

 

 어느 날 저녁 준비를 하기 위해 큼지막한 양파 한 개를 다듬다가 어렵게 상담소를 찾아와 깊은 속 내를 드러내기까지 힘들어하고 고통스러워 하던 분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상처에서 빨리 회복되기를 바라며 급한 마음에 오히려 내담자의 아픈 상처를 순서 없이 헤집지는 않았는지… 갑자기 양파의 매운맛이 코끝에 훅 닿자 나도 모르게 손에 든 양파를 싱크대에 놓아버렸다. 겉으로 드러난 상처를 먼저 다루면서 드러나지 않은, 그래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 내면에 깊이 뿌리 박힌 상처를 스스로 찾아가면서 회복되고 힘을 얻도록 돕는 자의 따스한 공감적 배려와 기다림을 잊은 체…. 때론 내 자신이 성급하게 치유하는 능력이 있는 것처럼 착각 할 때에 더 잘 도울 수 있는 기회를 놓친다는 깨달음을 얻는 순간이었다. 내가 처음 상담 훈련을 받을 때 상담 과정을 양파 까는 과정에 비유로 설명한 것이 기억에 오래 남아 상담의 순서와 속도를 조절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곤 한다. 가끔 기초적인 과정을 간과하여 당황스럽지만…

 

 몇 년 전에 어떤 분이 아내의 언어 폭력으로 바보가 되어가는 자신을 도와 달라며 힘 들게 입을 열었다. “나도 나 자신을 모르겠으니 빨리 고치는 방법이 없겠습니까? 태어나서 누구에게도 하지 못한 이야기를 처음으로 선생님께 털어놓습니다. 아휴! 부끄럽네요…. 말하자면 제가… 제가…솔직히 말해서…저의 가식으로 인하여 저의 진짜 모습이 드러날 까봐 철저하게 감추고 있지만 이제 저를 비롯하여 주위에 있는 모든 분들까지 속이며 살고 싶지 않아서요. 세상을 훨훨 날면서 자유롭게 살고 싶거든요. 아내가 방구석으로 몰아 세우고 잔소리를 쏟아낼 땐 가시로 내 가슴을 찌르는 것 같아 견딜 수 가 없습니다. 왜 내가 이렇게 사는지…하고 싶은 말이 목까지 올라와도 표현도 못 하고…이제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화가 치밀어 올라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 지 나도 모르겠습니다. ”라고…  

 

 한 젊은 여성이 남편의 괴롭힘으로 헤어졌다면서 가쁜 숨을 몰아 쉬며 하는 말이 “요즘에는 남편이 다시 합치자고 전화가 자주 와요. 불쌍해요. 미워할 수가 없어요. 심하게 괴롭히면 화가 나야 했는데 화가 나지 않았어요. 오히려 지금은 감싸주고 이해해주고 싶어요. 그이에게는 제가 필요해요. 주위에선 모두가 미쳤다고 말리지만 나도 내 마음을 잘 모르겠어요. 저, 정말 외로워요…외로워요...”라고….

 

 이들을 돕는 일은 그들이 힘겹게 살아온 세월만큼이나, 겹겹이 쌓인 상처의 깊이 만큼이나 오랜 시간이 걸린다. 과거의 상처를 묻어 둔 채 현재의 아픔과 문제는 해결 될 수 없다. 그런데 아픈 상처를 한겹 한겹 도려내기란 고통스럽고도  긴 작업이다. 기억하기 싫어서 깊이 감춘 아픔을 꺼내어 바라보게 하는 것은 아물어가는 상처를 헤집는 것만큼이나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렇지만 양파를 한 겹 한 겹 까듯이 겉으로 드러난 문제부터 다루다 보면 밑에 깔려 있는 원인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그러나 자신이 왜 분하고 억울하고 서러운지도 모르고 답답해서 언제 마음 문을 닫고 상담을 포기 할 지 모르는 그들을 이해해주면서 우선 라포(상담 관계, 친밀관계)를 형성해간다. 영.유아 때부터 충분히 좋은 엄마의 보살핌을 느끼지 못하고 자라면서 마음 깊은 곳에 차곡차곡 구겨 넣은 아픈 사연과 느낌들이 대화를 통해서 아픔을 자각하고, 자신을 알고, 이해하고, 인정하고, 사랑할 수 있도록 도우면서 차츰 차츰 깊이 뿌리 내린 상처에 하나 하나 접근해간다.

 

 오랜 동안 상담 받으러 오는 분이 가끔 표현 하는 말이다. “이제 더 이상 내 마음 안에 상처가 드러날 것 같지 않은데 오늘도 엄마 아빠의 사랑과 관심으로부터 거절당했다는 느낌만으로 억울하고 서러운 감정이 올라오니 눈물이 나네요. 오늘은 별로 할 이야기가 없을 줄 알았는데… 오늘도 내 마음 깊은 속에 사랑 받고 싶은 욕구, 인정 받고 싶은 욕구, 칭찬 받고 싶은 욕구가 좌절될 때마다 묻어 두었던 것들이 이리 힘 들게 할 줄 몰랐어요. 매번 경험하지만 나의 상처가 하나 하나 드러날 때마다 아프지만 몇 일 지나면 진한 안개가 걷힌 듯이 기분이 맑아지고 어깨가 홀가분해지면서 살아갈 힘이 생기는 것 같아요. 부모님에 대한 분노도 삭으라 들면서 오히려 연민의 정이 생긴다고 할까요? 어색하지만 언제부턴가 e-mail로 편지를 주고 받고 있어요.´

 

양파를 겉부터 한 겹씩 까듯이 현실의 어려움부터 이야기를 나누지만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항상 부모님과 형제들 사이에서 맺힌 응어리에 걸려 있음을 알고, 어이 없어 하면서 서럽고 억울한 눈물을 쏟고 홀가분해진 마음으로 돌아간다. 그 후에 만나면 조금씩 삶에 대해서 자신감도 생기고 가슴에 와 닿지 않던 하나님의 사랑도 따뜻하게 느껴지니, 마음에서 우러난 교회 봉사도 하게 되고 남편이나 가족 그리고 성도들간의 관계도 편안해진다는 삶의 경험담을 털어 놓곤 한다.

 

 그러나 내 자신이 성급한 치료를 기대하고 대화를 하다 보면 예기치 않은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아픈 이야기를 조금씩 드러내도록 세심하지 못한 탓에 오히려 상담 가와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것만으로 상심해서 상담을 포기하는 분들도 가끔 있다.

 

“선생님! 제가 왜 닥친 일을 스스로 알아서 해결 하지 못하고 불안해서 신경안정제까지 먹어야 하는지 이제 알았어요. 어릴 때부터 모든 일을 아버지 뜻대로 해야만 집안이 조용했기에 엄마부터 저희 형제는 목소리 큰 아버지의 위협에 그만 기가 죽어 살아온 때문이라는 걸요. 그래도 아버지가 해주신 일은 항상 완벽해서 마음이 편했어요. 죄송하지만 지금은 우리 아버지를 비난하는 것 같아서 상담을 못 받겠어요. 기운도 없고 마음도 무거워요.”  

 

 이런 사례를 접하게 되면 내 자신을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아아! 내가 너무 성급하게 본인이 감당하기 힘든 깊은 상처를 건드렸었구나. 아직 더 토닥거려 주고 격려의 따뜻함이 필요했던 분 인데….’ 그 동안 하고 싶었던 말을 들어 줄 상대가 필요했을 텐데….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미움의 감정이 하나로 얽히고 단단하게 뭉쳐 있는 어린 아이의 마음 상태에서 그 갈등을 소화해내기란 아주 버거웠을 텐데… 사랑과 미움의 감정이 서로 분리되기까지는 혼란 자체였을 텐데… 물론 약 복용으로 심리적 변화에 적응하는데 힘 든 이유도 있겠지만…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내내 미안한 마음이 자꾸만 밀려온다.

 

 정신과 의사이자 정신치료가인 이 동식 선생 책의 내용을 다시 떠올려 본다. “환자의 제일 표면에 있는 문제를 제쳐놓고 자꾸 밑의 것을 다루려고 하면 안 된다. 양파 까듯이 맨 위에 있는 것을 까면 자연히 밑에 있는 것이 저절로 나온다. 위의 것을 놔두고 밑의 것을 자꾸 꺼내려고 하면 안 된다. 표면에 있는 것을 까면 저절로 속에 있는 것이 나온다. 표면부터 들어가는 게 중요하지…..”

 

   싱크대에 떨어진 양파를 다시 집어 들고 뚝배기에 양파만 가득 넣고 된장 찌개를 끓이면서, 약하고 부족한 부분은 원더풀 카운슬러이신 성령님께 간구하며 내 안에 사랑의 감정을 가득 채워가리라고 속삭여본다... 담백하고 달짝지근한 찌게 맛이 잠깐 엇갈리고 따스하게 감싸주지 못해 잠시 뒷걸음질 치고 있던 상담을 되돌아보게 한다. 양파를 한 겹 한 겹 깔 때마다 눈물이 나듯이 마음의 아픔과 상처를 한 겹 한 겹 들추어낼 때 마다 눈물이 난다. 그렇지만 그 슬픈 눈물은 결국 용서와 감사와 사랑의 눈물로 바뀔 것이다. 양파가 된장 찌개 맛을 내는 과정에 눈물이 나듯이 고통스러운 삶에서 맛나는 삶으로 나아가는 과정에 눈물이 있다. 오늘 따라 눈물 나게 하는 양파의 톡 쏘는 향기가 달콤하게 코끝을 스친다. 오늘은 양파 향이 주는 눈물 조차 싫지 않다.

 

**라포(Rapport)란 피상담자가 상담자에게 문제를 터놓고 말할 수 있는 허용적인 분위기를 말한다. 상담자와 내담자가 조화롭게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라 하겠다. 라포(Rapport)란 상담에서 관계 형성으로 서로간의 신뢰/믿음으로 형성 된 관계를 말한다. 내담자가 자신의 문제를 노출할 수 있도록 상담관계가 안전하다는 믿음이며, 내담자와 상담자 사이에 놓여진 다리라고 할 수 있다. “마음이 통한다. 무슨 일이라도 털어놓고 말할 수 있다. 말한 것이 충분히 이해된다.”고 느껴지는 관계 즉 친밀감 형성이 라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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