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 에세이

 

상담가  임옥순

                   

장작 타는 냄새 속에 담긴 사연들      

 

퇴근 길 집 근처 골목길에 들어서는데 코 끝에 익숙한 고향의 향기가 진하게 와 닿았다. 어둑해질 무렵 우리 동네 이 집 저 집 굴뚝에서 밀려나오는 장작 타는 냄새로 마침 어린 시절 해질 녘 골목길에 들어 설 때 느낌처럼 온 몸을 감싸 안고 가슴 속에까지 타고 들어와 평온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내 마음은 어느새 장작 타는 냄새에 끌리어 어릴 적 고향 집 아랫목에 들어가 후닥닥 앉아버렸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아늑하고, 따스하고, 편안한 어머니의 품에서 한 참을 머물다 아랫목에 묻어 둔 밥 한 공기 먹고 서둘러 나왔다. 이 때 코끝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은 몹시 차가웠고, 겨울바람에 시린 내 두 발은 차가운 길목을 터벅터벅 걷고 있는 게 아닌가…….

 

코끝에 와 닿는 차고 산뜻한 공기를 깊게 들이마시고 내 뱉기를 서 너 번 하고 났더니, 배에서부터 가슴을 지나 목까지 타고 올라오는 뜨거운 기운이 콧등과 눈물샘을 툭 치고 지나갔다. “내가 왜 이러지.... 누가 나를 건드렸지.... 어쨌는데.... 엄마가 이 순간에 왜 떠오르는 거지…. 아아 엄마가 보고 싶었구나! 엄마 품이 그리웠구나!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엄마가 내 마음을 몰라주어서 많이 화가 났었구나!”순식간에 일어난 술렁임이었다. 그리움이라는 감정이 나의 정서 밑바닥에 깊게 깔려 있어 장작 타는 냄새가 엄마에 대한 그리움 속으로 끌고 들어가 결국엔 눈물샘을 터트리고 말았다. 눈물의 정체! 아, 그리움!!!

 

“내가 왜 이러지?”라고 생각하고 의식하기도 전에 이미 쓸고 가버린 불쾌한 감정들, 화나게 하는 감정들, 우울하게 하는 감정들, 불안하게 하는 감정들, 의심하게 하는 감정들, 공포감에 휩싸이게 하는 감정들 이 외에도 수많은 감정들이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서 실수와 사건과 문제와 아픔의 뿌리가 된다. 깊게 뿌리 박힌 상처일수록 어렸을 때 어머니나 혹은 아이를 돌보는 가까운 가족들간의 관계 속에서 정서적 영향은 더욱 크게 받는다. 상담을 받기 전에는 아동기 때 형성된 부정적 감정 패턴의 영향이 미치는 아픔을 깨닫지 못해 괴롭고 혼란스러워 했던 분들이, 정기적으로 만나 어릴 적에 경험된 기억들을 힘들게 털어놓으면서부터는 현실적인 문제와 자신의 근본적인 상처의 원인과 뿌리를 알고 이해하고 가슴에 맺힌 응어리까지 엉킨 실타래를 풀듯이 풀어가면서,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회복되어가고 있다고 고백하는 분들의 사연을 정리 해 놓은 많은 이야기들이 나의 상담 일지에 담겨 있다.

 

2008년 한 해를 보내면서 그 동안 만났던 분들이 털어 놓은 상처의 아픔과 고통의 사연들을 놓치지 않으려고 꼼꼼하게 기록해 두었던 상담 일지를 열어 보게 되었다. 사연들은 어린 시절 받았던 사랑과 외면당했던 사랑 사이에서 웃음과 울부짖음이 갈리었다. 상담은 사랑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돕는 학문이라더니 일지 속에 적혀 있던 사랑에서 소외된 많은 사연들이 눈에 들어온다.“

 

“늘 삶이 회색 빛 같이 우울하고 암울해서 미래가 보이질 않아요…. 늪 속에 빠져 머리를 들고 나오기가 너무 힘들어요…. 남편에 대한 의심이 나를 너무 비참하게 만들어요…. 이번에는 꼭 이혼하기로 마음먹었어요….. 매사가 뭔가에 쫓기는 듯 불안해서 깊은 잠이 오질 않아 늘 피곤하고 무기력 해져요…. 한 쪽 가슴이 터질 것 같이 아프고 답답해요….. 자다 일어나 침대가장자리를 보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아 두려워요….. 싸우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나에게 피해를 준 가족들이 분하고 원통해서 아주 큰 사고라도 나면 원이 없겠어요…. 내가 어떻게 해야 폭력적인 남편을 잠재우고 같이 살 수 있을까요….”라고 말문을 열면서 털어 놓은 많은 사연들과 문제의 핵심을 풀어간 과정들을 글로 빼곡하게 정리 두었던 상담 일지다. 그리고 이 분들의 문제 핵심을 잘 파악해서 상담을 잘 진행하고 있는지, 아니면 잘못 파악했는지를 슈퍼바이저로부터 지도 받은 내용들을 꼼꼼하게 정리해 두어 그들을 돕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던 기록도 차곡차곡 담겨 있다.

 

상담소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부터 상담을 마치고 돌아갈 때까지 얼굴 표정, 옷차림, 자세나 행동들과 그 때 그때 나눈 중요한 이야기들을 기록해 놓았던 것을 읽으면서 한 사람 한 사람을 떠올려보았다. 참 많은 이야기들과 북받쳐 올라오는 감정들을 터트리고 표현한 흔적들이 상담일지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들의 아픔과 상처를 다시 한 번 기도하는 마음으로 어루만져 주면서 한 장 한 장 넘기며 일지 속에서 그들과 다시 만나보니 더 잘 돕지 못한 아쉬움과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 들과 마주 앉았을 때 그들이 경험하는 감정을 나도 경험했었고, 그들이 경험하는 아픔과 갈등을 나도 경험하였기에 조금이나마 그들의 말을 더 잘 들어 주고 공감해주고 지지해 줄 수 있었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들이 남겨 놓은 아픔의 흔적을 통해 그들을 향한 나의 기도가 더 깊어져 가고 있다.

 

장작 타는 냄새 속에 담긴 나의 분노와 그리움을 찾아냈듯이 쏟아내는 아픔 뒤에 숨어 있는 오래된 상처를 찾느라 갈팡질팡했던 기록들이 다시 말을 걸어온다. 정신 장애로 병원에 입원 시킬 수밖에 없는 남편에게 시달리고, 학교생활에 적응하기 힘들어 하는 자녀를 돌보느라 지쳐 6개월 동안 상담을 나누었던 분과 다시 상담 일지 속에서 만났다. 그 분의 얼굴 표정과 모습과 억압된 감정들을 끌어올리며 힘들어했던 기억들이 아프게 밀려온다. 지나치게 자신에게 의존하는 친정 가족, 정신적인 고통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어도 신혼 초부터 무관심했던 시댁, 자신만 아는 남편에 이르기까지 섭섭한 마음이 들어 분노를 참을 수 없다 했었다. 무엇보다 어릴 적에 엄마에 대한 기억은 화장하고 화려한 옷 치장으로 외출하는 공주 같은 엄마의 모습 이였다고 했었다. 자신만 아는 엄마와 자신만 아는 남편과는 너무도 닮았단다.  지금도 자신이 친정 일까지 끌어안고 한 가정을 힘겹게 꾸려가고 있다는 그 분… “이제는 쉬고 싶다. 수양버들처럼 내 마음이 부드러웠으면 좋겠다. 마른 수건이 서서히 물로 젖어가는 것 처럼… 서로 다른 색깔들의 조화로 아름다운 단풍 처럼…  초콜릿 맛은 비슷하지만 모양이 달라서 고르는데 재미있었던 것처럼 내가 변화되고 싶다.”고 기록된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어려울 때 같이 해주어서 감사했다는 카드를 보내고, 약 복용과 상담으로 안정을 얻고 있는 남편과 학교에 잘 적응해서 대학 가는 게 꿈이었던 아들이 대학에 들어갔다며 생활의 안정을 찾아갔던 그 분을 일지 속에서 만나니 요즈음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진다.

 

 상담일지를 넘기다 보니 어떤 대학생 일지 앞에서 머물게 되었다. 많이 도울 수가 없어서 아쉬움이 많이 드는 학생이었다. 재혼한 엄마에게 짐이 되어 외할머니 손에서 자라다가 미국 친척집에 입양되어 살고 있었다. 상담 시간 내내 소리 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으면서 손에 든 젖은 화장지를 주무르고 부서뜨려 앉은 자리 주변에 하얗게 떨어져 있었던 기억이 먼저 떠오른다. 어릴 적 엄마에 대한 기억은 운동회나 소풍 갈 때 엄마는 항상 같이 있어주지 않아서 슬펐던 것과, 늘 지나다니던 동네 하수구에 빠졌을 때 살려 달라 소리치니 엄마가 아니라 어떤 동네 아주머니가 구해주었다는 것 밖에 기억나질 않는다고 했던 학생이다. 울음소리도 내지 않고 두 눈에서 뚝뚝 떨어지는 눈물은 세상에서 버려진 존재라는 아픔, 사랑의 거부, 박탈, 거절, 보살핌을 받지 못해 외롭고, 슬프고, 불안하고, 화나 분노로 찬 적개심이 올라와 현실이 힘들었을 것이다.

 

지금은 어린 아이가 아닌 대학생이지만 친척 되신 분의 형편과 사정은 헤아리지 않고, 자신을 잘 챙겨주지 않고 무관심 하는 게 너무 화가 나서 학교도 휴학 했다면서, 왜 그렇게 분노가 올라오는지 억제가 안 된다며 울먹였었다. 사실 어릴 때부터 쌓인 엄마에 대한 분노와 사랑이라는 양가감정 때문에, 힘이 없고 연약한 아이는 힘 있는 엄마에게 표출 한 번 하지 못한 억압된 분노와 불안이 강하게 올라와 친척 되신 분의 무관심과 서운함에 강하게 반발하며 싸웠던 것이다. 자신의 어릴 적 이야기와 형편을 되돌아보면서 자주 싸우게 되는 깊은 뿌리의 원인을 알아가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니까 많이 안정 되어가고 있다 했다. 친척 분이 밉고 심통이 나서 미루었던 학교 등록을 마치고 나니 다른 일도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다면서 몇 번 상담을 받다가 중단한 아쉬웠던 케이스였다.

 

일반적으로 상담과정에서 억압된 감정이 올라오면 더 고통스럽고, 혼란스럽고, 자신의 아픔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 저항감 때문에 상담을 포기하고 도망 갈 이유를 찾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상담 과정과 효과를 알고 이해하게 되면 저항을 극복하고 성숙 할 기회를 경험하게 된다. 나 자신도 개인상담을 통해 저항감을 자주 경험하고 있다. 상담 가가 자신에 대해서 잘 알고 이해해야 다른 사람들을 잘 도울 수 있기 때문에 내 안에서 올라오는 다양한 감정들을 느끼고 경험 하면서 치료 받고 훈련 받는 것을 미루지 않는다.

 

내게 있어서는 상담일지가 상담을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지속적으로 상담을 받으며 변화와 성숙을 경험하는 분이 가끔 상담 중에 이렇게 말하곤 한다. “선생님은 제가 한 말을 놓치지 않고 기억해 주시며 끌어주시니 신뢰감이 생겨 상담이 기대가 되요.”라고…. 그 분에게 치료의 효과를 더 해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나의 상담일지 덕분이었을 것이다. 상담 중에 나눈 중요한 핵심적인 내용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그 때 분위기나 감정 상태를 생생하게 남겨 놓기 위해서 기록 하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으려고 한다. 기록하고 나면 내 자신이 뿌듯함과 보람을 느끼곤 하니까… 그 분들의 아픔과 고통을 다 헤아려 도울 수 있는 능력은 부족하지만, 우리의 원더풀 카운슬러이신 주님이 계시기에 나의 부족함을 안고서 상담 사역을 감당해 오고 있을 뿐이다. 그 동안 기록한 상담 일지 내용은 많은 분들이 처음에 불안하고, 무겁고, 어둡고, 막막하고, 황당하고, 당황스런 사연들을 털어 놓았던 것들과 상담이 진행 되고 무르익어 감에 따라 내면 밑바닥에 깊게 깔린 감정들이 올라 올 때 느껴보고 아픔과 상처의 원인과 뿌리를 알고, 이해하고, 깨달으면서 조금씩 의식이 확장된 이야기와 믿음이 확장된 아름다운 이야기로 채워 진 사연들이었다. 패밀리 인 터치 상담 사이트가 고통과 아픔이 아름다운 이야기로 바뀌는 수가 성 우물가가 되었으면 한다. 나의 상담 일지가 두툼해질수록 이 땅의 아픔이 얇아지기를 기대하면서 지난해 상담 일지를 덮고, 2009년 첫 상담일지를 펼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