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에세이 

 

글쓴이 임 옥순

 

옥수수 반쪽에 담긴 미래!

 

어느 날 어느 고등학교 교정에 몇 십 년 자란 커다란 아름드리 나무 몇 그루가 잘려 나가고 밑동만 훤히 속내를 비춰 주고 있었다. 나무의 나이테를 보니 상처 받은 흔적 없이 몇 십 년을 아주 건강하게 잘 자란 나무였음을 한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잘려나간 나무의 가지런한 나이테를 보면서 내 삶의 나이테를 생각해보았다. 내 삶의 나이테는 꽤나 굴곡이 많았던 것 같아 나무에게 부럽기까지 했다.

 

어떤 나무에서 세 번째 나이테에 심한 굴곡이 발견 된다면, 그 나무는 3년 되던 해에 성장에 심각한 장애를 받았음을 알 수 있다고 한다. 또한 그 굴곡진 모양으로 미루어 그것이 나무꾼에 의해 도끼로 찍힌 것인지, 혹은 벌레에 파 먹힌 것인지, 폭풍우로 찢기었거나, 휘어졌거나, 상처가 난 것인지 까지 추측해 볼 수 있고, 주변 기후까지도 알아 낼 수 있다고 한다.

사람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성장과정에 상처를 입으면 그 부분에 굴곡이 생겨 이후 삶이 뒤틀리게 된다. 어릴 때에 “충분히 좋은 엄마”라는 환경을 경험하지 못하거나, 지나치게 정서적으로 결핍되거나, 과잉충족으로 깊이 파인 상처가 근본적인 원인이 되어 어른이 되어서도 굴곡진 삶을 살게 된다.

그 동안 상담소에 찾아 와 부부 갈등, 우울, 불안, 강박신경증 등을 호소하는 이들의 뒷면 이야기들을 들어보면, 어릴 때 엄마, 아빠, 가족들로부터 사랑 받고 싶은 욕구, 인정받고 싶은 욕구, 지지 받고 싶은 욕구가 박탈되거나, 좌절되거나, 거부당하거나, 무시당한 상처 때문에 삶이 힘들었고 지금도 고통스럽다고 한다. 상담은 어른들의 눈높이 차이로 어린 아이들의 욕구를 무심코 지나친 기억들.... 어른들의 권위적인 힘에 눌려 할 말을 못하고 아예 입을 다물어버렸던 억울한 이야기들을 지금 이 자리(here & now)에서 안심하고 편안하게 끌어내도록 도와서 현실의 아픔과 문제를 풀어나가도록 돕는다. 아이들의 마음에 심겨진 자책감, 죄책감, 수치심, 분노, 적개심... “입 닥쳐!” “눈물 뚝!” “네가 뭘 안다고!”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꾹꾹 참았던 억울한 감정들을 이제야 토하는 그들의 사연들…….

“저는 싸우는 걸 아주 싫어해요, 그래서 남편하고도 싸우지 않으려고 웬만하면 참고 그냥 넘어가지요. 그런데 요즈음은 남편 때문에 왠지 모르게 화가 나고, 내 스스로 어떤 일도 할 수 없어 불안해요. 매일 새벽마다 기도하는데 하나님은 왜 내 기도를 들어주지 않는 거예요?. 어렸을 때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우리 가족들은 항상 아버지의 뜻대로 모든 걸 따라야만 했어요. 누구라도 자기의 의견을 말하면 시끄럽고 난리가 나거든요. 집안이 시끄럽지 않으려면 우리 모두는 조용히 입 다물고 있어야 했어요. 엄마조차도 무조건……. 아버지가 모든 걸 다 알아서 해주었어요. 심지어 제 여행 가방을 꾸리고 있으면 아버지가 다시 싸시는 거예요. 제가 하고 싶었는데……. 늘 이런 식이었어요.”

“저는 건강이 허약하게 태어나서 엄마의 기대에 못 미치는 존재였어요. 저는 늘 우리 가족으로부터 제외 되었어요. 소외되고 이방인이고…….그래서 어렸을 때 우리 가정에서 일어나는 일은 저만 몰랐어요. 아예 관심 받을만한 가치도 없는 아이로 취급 당했어요. 부모의 손이 별로 필요 없을 정도로 있는 듯 없는 듯 순하게 자랐대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못하고 마음과 입을 다물어버렸지요. 그래서 제 존재감에 대해서 긍정적 이질 못해요…….”

“우리 집엔 아들이 귀했어요. 제가 태어나자 할머니는 저를 차가운 윗목에다 밀어버리고 삼일 동안 젖을 안 먹였대요. 그냥 죽어버리라고… 엄마는 딸을 낳은 죄인이 되어서 산후 조리도 못하고 밭일을 나가셨대요. 그래서 평생 신경통이 왔다고 하시죠.… 그래서… 엄마가 저를 미워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자랐어요. 내가 아들이 아니어서… 그게 내 죄는 아닌데도….”

 

이렇게 힘든 자신들의 이야기들을 드러내면서부터 그들은 ‘지금 이 자리(here & now)’에서 내가 왜 아픈지 원인을 알아가고, 어렸을 때부터 참고 눌렸던 감정들을 힘들게 느끼고 경험하기도 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회복되어 가는 자신을 발견한다고 한다. 그 분들은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이,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니 자유롭고, “내가 이렇구나. 내가 이런 모습이었구나.” 라고 인정하고 나니 상대방(남편, 가족)의 반응이 달라지거나, 혹은 달라 보이기도 하고, 문제의 원인이 내 안에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상담소에 올 때는 끌려오는 기분으로 왔다가, 마음에 거리끼는 것들을 털어 놓고 나면 가슴이 후련하다면서 한 쪽 가슴을 쓸어내리며 문을 나서는 분도 있다. 잊고 싶어 마음 밑바닥에 숨겨두었던 아픈 이야기들... 결코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았던 슬픈 이야기들.... 숨 막힐 듯 답답한 응어리들을 마음 놓고 쏟아 낼 수 있는 그들의 유일한 공간이 되어주고 있는 패밀리 인 터치 상담소가 고마울 뿐 이란다.

 

어린 시절의 심리적 결핍으로 애정과 인정에 대한 욕구가 결코 충족될 수 없는 갈망을 지닌 채 과도한 욕구불만 속에서 살았기에 이런 도움을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어린 시절에 돌봄과 사랑이 부족했다면, 지금부터라도 그 결핍을 채워야 하고, 충분히 누리지 못한 만족감이 있다면 이제라도 맛보아야 하지 않을까.... 심리적 결핍을 채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현재의 가족으로부터 채우는 방법이 있고, 결혼을 했다면 결혼으로 형성된 새로운 가족으로부터 충분한 돌봄과 사랑과 격려를 공급받아 전 보다는 훨씬 행복한 삶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얼마 전에 두 살 난 조카딸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가족들이 모였다. 지난 2년 동안 하얀 도화지 위에 자신만의 경험을 마음대로 스케치해가고 있을 조카딸! 그날 그 아이를 본 나의 느낌은 참으로 안정된 편안함 그 자체였다. 아이 이야기를 나누던 중, 어느 날 아이에게 삶은 옥수수 반쪽을 주었더니 그 것을 가슴에 안고 너~무! 너~무! 만족한 표정으로 행복해 하더라는 것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가슴은 어느새 아이가 느낀 그 만족감으로 가득 채워지는 경험을 했다. 그래! 아이들은 이러한 만족감을 원하는 거야.” 이런 심리적 만족감을 온 몸으로, 그리고 마음 속 깊이 느끼는 아이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아이에게 눈높이를 맞춰 줄 줄 아는 엄마의 공감의 힘! 느낀 그대로 온 몸으로 그 만족감을 천진하게 표현하는 아이의 몸동작과 표정이 내 마음에 각인이 되어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잊히지 않는다. 이와 같이 아이가 만족감을 경험하고, 또 경험하고, 계속해서 경험할 때마다 아이의 정서는 경험한 만큼 건강하게 성숙 할 것이다.

“옥수수 반쪽에 담긴 조카딸의 미래”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또, 아이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는 또 다른 옥수수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하고....

 

* 만족(Satisfaction)

불만이나 불편을 피하고 고통 없는 상태를 인간은 추구 하고, 자아는 인간 정신에서 불안을 제거하고 평형 상태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작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