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 에세이

 

상담가  임옥순

                

친구여, 홍시는 보내지 말라!

 

몇 년 전, 설을 앞 둔 어느 날 한국에서 보낸 소포 한 상자가 도착했다. 40여 년 전 단발머리 중학교 시절, 기억도 가물가물한 같은 반 까까중 남학생이 보낸 곶감 상자였다. 그 후로도 미국에서 곶감 구경이나 하겠냐며 설 때마다 몇 년째 챙겨 보내준 곶감 덕에 세밑이 따스했다. 곶감 값보다 운송비가 배나 되는 것 같아 미안하지만 설이 다가오면 나도 모르게 곶감이 기다려진다. 내가 곶감 좋아하는 줄 어떻게 알았을까? 하얀 분을 뒤집어 쓴 곶감, 말랑말랑하고 속까지 보일 듯 투명한 선홍의 유혹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처럼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했다. 냉동실에 넣어 놓고 한 개씩 꺼내 먹을 때마다 입안에 가득 찬 깊은 단맛에 홍시감에 얽힌 옛 추억들이 하나 둘 고개를 든다. 곶감 하나 베어 물면 철 따라 열리던 감 꽃, 시퍼런 땡감, 노오랗게 익은 감, 그리고 마침내 홍시까지 감 형제들의 색다른 맛이 한꺼번에 밀려와 입안을 휘젓는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우리 집 문간에서 문지기로 서 있던 감나무가 이제서야 기억해 주는 내게 눈을 흘긴다. 치즈 먹더니 긴 세월 쌓았던 정까지 잊을 수 있냐며 토라질 법도 한데, 이제라도 기억해주어서 반갑다며 내게 손을 내민다. 그래, 너는 늘 든든한 내 편이었는데… 미국 생활이 바쁘다고 너를 잊다니! 미안, 미안해!

 

가끔 읍내 5일장에 가셨다가 약주 몇 잔에 비틀거리며 들어오시는 아버지의 기분을 가장 먼저 전해 주는 전령사 이기도 했던 내 친구 감나무!  “순아! 아버지 오신다~~ 오늘 밤도 귀가 따가울 텐데… 그래도 어쩌겠니. 힘 내라!” 스르르 감기는 눈을 비비면서도 녹음기처럼 반복되는 아버지의 훈계를 싫다는 말 한 마디 못하고 끝까지 듣고 지쳐 잠든 나를 감나무는 무척 안쓰러워 했다. 그런데 늘 아낌 없이 마음 써주었지만 감나무는 내게 딱 2% 부족한 친구였다. 전날 밤 아버지 때문에 속상했던 마음을 달래려 새벽같이 일어나 감나무 밑을 살피면 까치가 시음한 홍시라도 한 개 떨어뜨려 달래주련만 감나무는 홍시 주는 것을 아까워 했다. 심통이 난 나는 친구 감나무를 뒤로하고 밤새 떨어졌을 홍시를 주으러 이웃집 감나무 밑으로 핑! 하고 가버리곤 했다. 잠이 없으신 이웃집 할아버지께서도 일어나지 않은 이른 새벽에 말랑말랑한 홍시 두어 개를 주워 후루룩 삼키고 나면 까칠했던 입안은 물론 상한 마음까지 달콤 시원해졌다. 홍시에 인색했던 감나무로 인해 홍시를 자주 먹어보지 못해 몹시 아쉬웠지만, 친구의 배려가 듬뿍 담긴 곶감 조차도 2% 부족한 홍시를 내 마음에서 온전히 밀어내지는 못했다.

 

홍시는 동전의 양면처럼 내게 아름다운 추억과 동시에 아픔도 함께 가지고 온다. 감나무에 보름달이 걸려 달 그림자가 마당에 길게 드리우던 날, 장에서 돌아오시는 아버지의 비틀거리는 그림자와 자주 겹치곤 했다. 마당에 널려 있는 감꽃 만큼이나 아버지의 훈계는 달이 기울 때까지 계속되어 방안을 가득 채웠다. 하나도 버릴 것 없는 옳으신 말씀인데, 공자왈 맹자왈, 삼강오륜이 어떻고, 여자애는 어찌해야 하고… 딸이 여섯이나 되는 아버지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무척 지겨웠다. 예쁜 옷 안 사오셔도 되니 술만 마시지 않고 돌아오시길 바라던 어린 소녀의 소원은 달 그림자와 함께 감나무에 걸려 하늘에 오르지 못했는지, 5일 장이면 자주 되풀이 되곤 했다. 나보다 나이 많은 감나무 가지에는 아버지의 바램과 자식 걱정, 그리고 고난의 시절을 살아오시며 겹겹이 쌓인 한이 무겁게 홍시와 함께 걸려 있어 홍시를 많이 맺지 못했나 보다.

 

오래된 전설처럼 때로는 돌에 새긴 금과 옥조처럼 나는 술 좋아하는 모든 사람들은 주는 것 없이 싫어 했다. 술집 근처에도 가고 싶지 않았다. 술 마시는 사람은 관심의 대상에서 무조건 제외되었다. 주당들은 도대체 왜 존재하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수수께끼였다. 아버지의 술 취한 모습에 실린 싫은 감정이 쌓이고 쌓여 내 심연을 지배하는 감정이 되었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술 먹는 남자와는 절대 결혼도 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었다. 그런데 이런 싫은 감정을 가진 내담 자들을 늘 만난다.

 

 떼쓰는 아들만 보면 몹시 짜증나고 화가 나서 아이를 거칠게 침대에 눕혀 놓곤 했다는 한 엄마를 상담을 하게 되었다. 수척하고 까칠한 모습이 매우 지쳐 보였다. “아이들이 다 귀찮아요. 돌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질 않아요.. 지치고 힘들게 하는 아들과 딸이 짐만 돼요. 더 기가 막히는 것은 딸 보다는 아들이 칭얼대고 짜증 내면 더 속이 뒤집어지고 화를 못 참겠어요. 열을 내면서 소리 소리를 지르게 돼요. 아니 내 인생을 비참하고 엉망으로 만들어 버리는 아들 같아요. 나도 모르게 별것도 아닌 일로 실컷 아들한테 화풀이 하고 나면 내가 한심하고 점점 우울해지고 불안해져요.” 상담 받는 동안 계속 만지작 거리는 얼룩진 핸드백이 눈에 들어왔다. 저리 오래 묵은 때를 씻어내려면 길고 긴 만남이 이어져야 할 텐데…. 넘어질 듯, 포기할 듯 보였지만 다행히 힘겹게 상담소 문을 들어섰다.

 

아들이 귀한 집에 딸로 태어나서 자식 취급도 제대로 받지 못해 외롭고 따돌림 당하는 느낌이 컸다고 했다. 심지어 아들 쌍둥이가 있는 이웃집으로 보내려고 했다는 말을 들은 후로는, 혹시나 남의 집에 데려다 줄까 봐 밖에 나가면 엄마 손을 절대 놓지 않았다고 했다. 설상가상으로 사춘기 때에 아빠가 외도를 해서 낳은 한 살짜리 남자 아이를 집으로 데리고 오셨단다. 하루 아침에12살 차이가 나는 이복 남동생이 생긴 것이다. 친구들에게 창피한 것은 물론이고 놀아 달라고 칭얼대면 어찌나 밉고 귀찮은지 밀쳐내고 싶을 때가 많았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어린 동생을 혼자 밖에 놓아 두고 방에 들어가 잠들어 버린 적도 있었다고 했다. 딸로 태어나서 남의 집에 보내질 뻔 했던 그 불안한 느낌, 이복 남동생한테 밀려난 느낌, 더불어 이복 남동생에 대한 창피하고 미운 감정이 깊이 숨어 있었다. 두 언니들과도 어울리지 못하고 항상 집안에서 외톨이로 지냈던 어린 시절의 서러움도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자기 내면세계를 들여다 보면서 딸 보다 아들에게 심하게 화냈던 실마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떼쓰는 아들에 대한 극심한 분노는 이복 동생에 대한 억울하고 창피해서 참았던 화난 감정이 아들한테 옮겨 붙은 것을 알게 되었다. 

 

이와 같이 어떤 사람에 대한 감정이 다른 사람에게 옮겨 붙는 것을 ‘전이’라고 한다. 상담에서 말하는 전이(轉移,Transference)라는 용어는, 내담자가 어린 시절에 부모를 비롯한 주요 인물들과의 관계에서 체험한 익숙해진 감정이 치료자에게 무의식적으로 옮겨 붙는 심리적 작용을 말하는데 일반적인 관계에서도 자주 사용한다. 전이는 우리 삶 속에서 빈번히 일어난다. 땅속에 뱀이 또아리 틀고 있다가 자극이 오면 스르르 머리를 바짝 치켜들고 이빨을 드러내듯이, 경험으로부터 길들여진 정서는 과거와 유사한 자극이 들어오면 자동적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자신도 모르는 무의식 속에 있는 과거의 강한 경험이 현재의 현실에 옮겨 붙어 현실을 왜곡해서 느끼게 한다. 전이로 인해서 ‘과거 그 때’ 의 감정이 ‘지금 여기 (here & now)’ 에서 되풀이 되어 현재의 감정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게 한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 “불에 덴 강아지 반딧불에도 끙끙거린다.” 는 우리 속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상담이 계속되면서 한없이 가라앉던 기운이 조금씩 올라온다며 아이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지워버리고 싶었던 경험들을 이야기할 때는 더 우울할 때도 있었지만, 입을 열어 말할 때마다 밀려오는 편안함은 늪 속에서 묻혔던 얼굴이 늪 위로 올라 온 느낌이라며 긴 숨을 몰아 쉬기도 했다. 떼쓰고 칭얼대는 이복 동생에 대한 굳어진 감정의 틀이 무의식적으로 아들한테 옮겨 붙었으니 두렵고 불안한 아들은 더 떼를 쓰며 질겁할 수 밖에…. 조금씩 억울한 감정이 풀리고 편안해지면서 짜증내고 소리질렀던 반사적인 행동도 줄어들게 되자 아들의 칭얼대고 떼쓰는 것도 줄어든다고 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은 얼마나 무섭고 불안하고 슬펐을까! 얼마나 억울했을까! 이복 동생과 아들 사이에서 헛갈린 전이감정을 이해하고 느끼면서 치료 과정이 진행되어갔다.

 

 술 마시고 담배 피운다고 인격까지 냄새 나고 비틀거리는 것은 아닌데 술잔을 기울이고, 담배 물었다는 이유로 내게 배척되었던 이들은 억울했을 것이다. 내가 무시한다고 속상할 사람들도 아닌데 술 취한 아버지에 대한 감정이 그들에게 옮겨 붙은 것 뿐인데 괜한 사람 미워하고 거리를 두었으니 어리석어도 참 어리석었다. 이미 하늘로 가신 아버지에 대한 감정이 지금도 이리저리 옮겨 붙고 있으니, 에구 언제나 철들꼬!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때 그 사람은 그 때 그 곳에 놓고 와야 하는데….

 

그런데 지난 해가 저물고, 설이 지나고, 정월 대보름이 지났는데도 곶감은 오지 않았다. 지난번 한국에 나갔을 때에 전화 하지 않고 돌아온 것 때문에 섭섭했나, 짝사랑이 식었나, 아니면 I love school에서 나보다 더 예뻤던 다른 중학교 동창생을 찾기라도 했나? 나보다 더 예쁜 동창생이 없을 텐데.. 그런데 정월이  지나면서 슬슬 신경이 쓰였다. 혹 아픈 것은 아닌가, 경제적으로 어려운 것은 아닌가, 마켓에서 곶감을 볼 때마다 그 친구가 마음에 걸렸다. 결국 전화기를 들었는데 지난해 8월 어느 날 직원들의 일을 대신 거들다가 크게 다쳐 그 때까지 병원에 입원해 있다고 했다.  곶감을 기다린 것이 몹시 미안했다. 그런데 그 동안 곶감을 보낸 것이 어쩌면 참 다행이다 싶다. 홍시를 보냈다면 어린 시절 홍시에 대한 감정이 그 친구에게 전이 되어 마켓에서 홍시를 살까 말까 망설이는 남편보다 그 친구가 더 멋있어 보이면 큰일 인데 말이다. 2% 부족한 홍시에도 늘 밀리던 곶감이 오늘 따라 더 맛있게 보인다. 친구야, 곶감 보내지 않아도 좋으니 빨리 병상에서 일어나라. 그리고 앞으로도 홍시는 절대 보내지 말라. 이 글을 보면 남편이 시장을 볼 때마다 장바구니에 홍시를 가득 가득 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