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 에세이

 

상담가  임옥순

                   

가시여 안녕!

부제: 가시 없는 산딸기를 기다리며…

 

가끔 남편과 운동 삼아 산길을 걷다 보면 내 마음은 어느덧 길가에 줄지어 있는 산딸기 덤불에 가 있곤 한다. 해마다 7월에 마주 치는 산딸기가 얼기설기 엉켜 있는 가시덤불 속에서도 따가운 햇살에 볼이 빨갛게 익어 푸른 잎 사이로 수줍은 듯 고개를 내밀며 신기한 듯 세상을 구경한다.

 “손에 쥔 한 움큼/ 친구가 그립도록 무르익은 / 유년의 맛을 딴다.” 는 소양 김길자 시인처럼 나도 일곱 살 소녀의 아련한 맛을 한 움큼 따려다 멈칫한다. 소녀의 입술을 붉게 물들였던 그 시절, 새콤달콤한 그 맛에 나도 모르게 다시 손을 뻗는다. 야속하게도 볼이 빨간 새색시를 보호하는 호위무사 가시들이 날을 세우고 내 손을 다시 거부한다. 등산용 스틱으로 산딸기줄기를 밀치며 딸기를 따려다 문득  가시만 없다면 얼마나 좋을까 투덜거리다가 이내 생각을 접는다. 아니다! 이렇게 짓밟고 밀쳐내며 따먹는 사람들, 동물들이 있는 한 산딸기 줄기는 더 날카로운 가시를 더 많이 낼 테니까 말이다.

 

산딸기처럼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서 사람도 호위무사를 둔다. 아픔을 많이 당 할수록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서 마음에 가시를 더 많이 품는다. 그 동안 상담 했던 많은 분들 중에 유독 가시가 연상되는 중년 내담자가 있었다. 어깨는 늘 축 쳐져 있었고, 겁에 질린듯한 커다란 눈에서 눈물이 쏟아질 듯 연신 헛기침을 하며 무겁게 입을 열었다. “제 아내는 날카로운 가시처럼 쿡쿡 찔러요. 저를 큰 유리 병에 넣고 마개를 닫아 질식 시킬 것만 같아요. 앙칼지고 큰 목소리로 달려들면 주눅이 들어 말 대답도 제대로 못해요. 심할 때는 구석으로 몰아 세우고 바늘로 찌르는 듯해 살고 싶지가 않아요. 비참한 마음이 들 때는 운전하다가 중앙 분리대를 받아버리고 싶을 때도 있었어요. 한 번씩 히스테리를 부리면 집안 물건들이 날아가고, 깨지고, 집안이 난리에요. 이제는 집 밖에서 잉꼬부부처럼 연극하며 사는 것도 더 이상 못하겠어요. 성난 아내는 꼭 제 어머니 같아요. 저는 남자지만 어릴 때부터 식모처럼 집안 일을 도맡아서 했어요. 일 하고 들어오셔서 시킨 일이 마음에 들지 않으시면 욕하고, 소리지르며 화가 풀릴 때까지 때렸어요. 아버지는 직업상 가끔 집에 들어오시는 분이라서 말도 못 붙였지요. 물론 고자질 하면 매를 더 벌기 때문에 입 밖에도 못 냈겠지요. 정말 내편이 되어 주는 사람이 없었어요. 제가 매를 피할 수 있는 길은 더 열심히 청소하고, 밥 잘 하고, 말도 더 잘 듣는 착한 아이가 되는 거였어요. 청소년기에는 죽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하곤 했어요.”

 

엄마 손에 들린 회초리는 어린 소년의 뼈 속까지 깊이 박혔을 텐데... 엄마의 가시로부터 겨우 도망쳤는데 이제는 엄마를 꼭 닮은 아내의 가시까지 찌르니 얼마나 가엾은지! 엄마한테 당한 상처가 아직도 아리고 아픈데 아내까지 힘들게 하니, 자신의 처지가 얼마나 비참하고 한심 했을까? 그의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독기 서린 잔소리가 내 몸에 꽂히는 것 같다. 그의 흐느낌이 쓰리게 내 마음에 흐르는데 그의 고통은 오죽했을까?  부부는 비슷한 상처를 가진 사람들이 만나서 익숙한 상처를 주고 받는다는데 이들 부부를 두고 한 말처럼 안타깝게도 그렇게 살고 있다.

 

 이 내담자를 상담하고 나면 열심히 뽑아냈던 내 가시 자국이 다시 아려 온다. 가시와 씨름하던 때의 아픔이 다시 밀려온다. 마음에 박혀있던 가시로 인하여  품어주고, 치료해 주고, 지도해 주는 분께 이렇게 말 하곤 했다.“ 한 바탕 전쟁을 치른 듯한 기분이네요” 빗속에 서있는 듯 볼을 타고 한없이 눈물이 흘러 내리던 기억이 난다. 그 후에도 내 몸에 흐르는 따스한 사랑의 진동이 약할 때마다 가시의 흔적은 날카로운 가시가 되어 나를 힘들게 할 뿐 아니라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를 서먹하게 만들었다.

 

  어린 시절 사랑에 대한 갈망이 채워지지 않으면 분하고 허기진 마음이 억압되어 가시로 자랐나 보다. 친정 엄마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라는 농작물에 비교 할 수도 없는 큰사랑을 받았을 텐데 나는 늘 허기진 아이 같았다. 어느 여름 날 저녁거리를 챙기러 밭으로 가시는 엄마를 쪼르르 따라 나섰다가 밭두렁 가까이 있는 산딸기 몇 알을 얻어 먹었던 기억보다 가시에 찔려 속이 상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언니들과 동생들도 맛보지 못한 달콤한 산딸기를 혼자만 입에 넣고도 부족해, 입고 싶고, 신고 싶고, 갖고 싶은 것들을 사달라고 졸래졸래 따라다니며 바쁘신 엄마를 성가시게 했다. 엄마의 사랑과 관심을 온통 다 차지하려고 얄미운 행동도 서슴지 않았나 싶다. 더 큰 사랑을 갈망했는데 결국 언니들과 동생들 보다 더 뾰족한 가시를 내 마음에 품고 말았다. 마음에 품고 있던 가시로 창피하고 한심스러워 일할 용기 조차 나질 않을 즈음 아주 특별한 사람이 내 속에 있는 사랑의 세포를 자극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식물학자 루터 버뱅크(Luther Burbank)!

 

 그의 맑고, 선한 마음에 뜨겁게 매료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사랑의 힘으로 온 몸이 화끈거리면서 심장이 뛰었다. ‘사랑의 진동’이라는 단어가 내게 거세게 밀려왔다. 인류에게 수백 종의 새로운 품종을 선물한 루터 버뱅크는 식물에게 '생각과 감정이 전파된다'는 신비로운 현상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가시 없는 선인장을 만들어 내기 위한 실험을 수행하는 동안 나는 <사랑의 진동>을 창조해 내기 위해 그 식물들에게 이따금씩 말을 걸곤 했다. '너는 아무 것도 두려워할 것이 없어. 그러니 방어를 위한 가시도 필요 없는 거야. 내가 너를 지켜주면 되잖니?' 그랬더니 그 사막의 식물은 점차로 가시가 없는 변종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나는 이 기적에 완전히 매혹되었다. 그리하여 점차 과학적인 지식과는 별도로 식물 생장의 비밀은 ‘사랑’ 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인류에게 선물한 것은 신품종이 아니라 ‘사랑’이었다.

 

루터 버뱅크의 ‘사랑’ 앞에서는 선인장도 가시를 버렸다. 그의‘사랑’은 식물의 고정된 형질을 변화시켜 새로운 식물을 탄생 하게 할 정도로 강력한 힘이었다. 마음씨 좋은 농부가 밭을 갈면 무엇을 심어도 잘 된다고 하는 말이 결코 헛된 말이 아니다. 옛 어른들이 ‘벼는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라는 말씀을 하곤 하셨다. ‘사랑’은 허기진 마음을 채울 뿐 아니라 가시를 뽑아내고, 상처 난 자국을 치료하고, 나아가 다시 가시가 박히지 못하도록 가시를 감싸 영롱한 빛이 나는 보석으로 바꿔주기까지 쏟아 넣는 신비한 약, 하늘이 준 선물이다.

 

 가시가 박힐 때만 고통스러운 것은 아니다. 어릴 때부터 깊이 박힌 가시들을 하나씩 뽑을 때에도 두렵고, 서럽고, 외롭고, 억울하고, 우울하고, 불안하고 아프다. 그래도 가시를 뽑아내야 했기에 가시를 잡고 씨름을 했다. 그러다 루터 버뱅크를 만나면서 가시 밑에 숨죽이고 있었던 달콤한 어머니의 사랑의 흔적을 찾기 시작했다. 내게 밀려오기 시작한 사랑의 진동을 내담자 들도 느끼도록 방향을 바꾸기 시작했다. 한 생명을 잉태하여 출산한 후 온 세상을 얻은 듯한 만족감으로 인해 보살핌을 받은 그 사랑의 느낌부터 끌어내기 위해 최소한 내 앞에 있는 모든 생명체에게 친절하고 감사하려고 애를 쓰기 시작했다. 아니 내가 더 사랑의 진동을 느끼고 싶은 간절함이 컸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내 가슴에 일기 시작한 사랑의 진동이 내담자 들에게도 파동이 되어 멀리, 그리고 깊이 퍼져나가길 소망한다.

 

   그 중년 내담자 에게 필요한 것은 가시로 짓 눌려진 엄마의 사랑의 흔적을 찾는 작업이었다. 이미 잊혀졌지만 사랑 받고 자란 세포를 찾아 숨죽이고 있는 사랑을 기억해 내는 지루하고, 힘든 작업을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미세한 엄마의 사랑의 부스러기를 찾아냈고, 작은 사랑의 진동을 느끼기 시작했다. 남편의 빈자리까지 메우며 자식들을 굶기지 않고, 헐벗지 않고, 배움의 길을 열어주려고 오직 자유로웠던 입으로 퍼부었던 어머니의 잔소리 밑에 깔린 어머니의 사랑을 느끼기 시작했다. 달리 교육을 받은 것도 없던 그의 어머니는 단지 물려받은 훈육 방법을 선택했는데, 어머니의 잔소리와 매에 실려 있었던 어머니의 애절한 사랑이 조금씩 살아났다. 어머니의 사랑의 에너지가 찡하니 눈물샘을 건드렸다고 고백하며 눈시울을 적셨다. 자기만 미워서 가시 돋친 매와 매보다 더 마음 상하게 하는 욕설을 퍼부은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서 몇 십 년 동안 얽혀 있던 한이 풀어지는 느낌이었단다. 아픔으로만 기억되던 가시가 어머니의 큐피드의 화살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뒤죽박죽이던 혼돈의 삶이 조금씩 자리를 잡아 간다고 했다. 

 

그 동안 하나님의 사랑도 한량없이 받았고,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의 사랑도 듬뿍 받았지만 아직도 솜털같이 많은 가시가 남아 있는데…  얼마나 더 많은 사랑을 받아야 가시가 사라질까? 차라리 산딸기 줄기 가시가 없어지는 것이 더 쉽지 않을까 싶다. 산딸기의 가시가 없어지는 날이 오면 내게도 가시 없는 그 날이 조금은 더 가까이 오겠지! 이제는 산딸기 가시가 할퀸 쓰라림 보다 딸기의 달콤함을 먼저 기억하고 싶다. ‘산딸기야! 내년에 이곳을 찾을 때에는 등산용 스틱도 없이, 등산화도 신지 않고 올께! 사랑한다. 많이 사랑한다. 내년에는 너도 가시는 내지 않아도 될 거야!’ 그리고 이곳에 푯말을 세워야겠다. “산딸기줄기를 아껴주세요. 그리고 사랑한다고 말해주세요!” 오래 전 밭두렁 곁에서 내 투정을 듣고 심통이 난 그때 그 산딸기 친구들은 달콤함보다 가시만 기억하는 내가 아직도 얄밉고 괘씸한가 보다. 이날을 기다렸다는 듯이 오늘 따라 산딸기 가시는 내 손등을 매정하게 할퀴었다. 그래도 사랑한다. 많이 많이! 그리고 늦었지만 미안 미안! 이젠 가시보다 달콤함을 더 많이, 더 깊이, 더 오래 기억할게! 달콤한 딸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