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 에세이

 

상담가  임옥순

                   

아버지가 있는 겨울 풍경

부제:  손 댈 수 없는 투박한 아버지의 손

 

풍년이 들려나 올 겨울에는 유난히 눈이 많이 내린다. 오늘 같이 함박눈이 쉼 없이 내리는 날에는 세상이 그대로 한 폭의 한국화가 된다. 하늘이 새하얀 눈으로 마치 여백 가득한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 같은 그림을 그린다. 노송 한 그루, 나이 먹은 나무 세 그루 그리고 초등학생이 몇 줄 선으로 그린 듯한 길쭉한 초가 한 채뿐인 세한도 보다 더 한가롭고 단초로운 그림을 그린다. 그림 볼 줄 모르는 나 같은 문외한도 ‘세한도’를 보면 왠지 춥고, 쓸쓸하고, 고독하게 느껴져 ‘세한(歲寒)’이라는 제목이 딱 어울린다. 그런데 왜 이런 단순한 그림이 국보인지는 잘 모르겠다.

 

   세월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 한 풍경이 있다. 초등학교 때 미술 숙제를 하기 위해 울퉁불퉁한 마루바닥에 도화지를 깔아놓고 삼지창 손, 만화 피너츠(Peanuts)에 나오는 라이너스를 닮은 머리칼, 나뭇가지처럼 앙상한 몸,  삐뚤삐뚤한 선으로 열심히 그린다. 가슴 설레게 하는 남자 선생님께 칭찬을 받으려고 두 손이 바쁘게 도화지 위에서 움직인다. 그런데 애를 써도 품질이 떨어진 도화지와 크레용이 별로 친하지 않는지 군데군데 뭉치고 들떠 부수수하다. 곁에서 지켜 보시던 아버지는 답답하셨던지 종이 조각을 접어서 뭉쳐있는 크레용을 살살 펴가며 문지르면 매끈하게 칠해진다며 거칠고 투박한 손으로 거드신다. 도화지의 하얀 부분이 드러나지 않게 칠해야 좋은 그림이라고 생각하셨나 보다. 그런데 성심껏 도와주시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푸근하거나 따스한 느낌이 아니라 왠지 눈물이 울컥 나올듯한 모호한 기분이다.

 

여섯 딸과 한 아들을 낳아 기르시면서 바삐 사셔야만 했던 아버지, 삶의 빈틈을 허락하지 않으셨던 아버지, 눈보라가 휘몰아치던 날에도, 눈 덮인 산 위로 펼쳐지는 시리도록 파란 하늘, 멀리 보이는 갯벌 위로 펼쳐지는 낙조 조차도 일손을 놓고 바라볼 수 없었나 보다. 손을 놀리는 것이 마치 죄인 양 눈 내리는 날이면 방에서 새끼를 꼬고, 삼태기를 만들고, 잠시 눈이 그치면 지게를 지고 산에 오르셨다. 아버지는 여백 없는 그림을 그리듯 당신의 삶도 늘 여백 없이 채우셨다. 아버지의 빈틈없는 삶은 내 마음에도 빈틈 없이 색칠하셨다. 나의 강박적이고 완벽 하려고 하는 마음의 틀은 어느덧 아버지와 국화빵이다.

 

  오랫동안 상담을 통해 마음의 여행을 같이 했던 중년의 여인이 생각난다. 그녀의 어린 시절은 돌이켜 보고 싶지 않은 깊은 트라우마로 가슴이 얼음장 같았다. 사춘기 아이의 문제로 상담을 시작했지만 정작 자신은 엄마이기를 포기할 정도로 차가운 기운이 가슴을 꽉 메우고 있었다. 하나 밖에 없는 아이가 심기를 건드리면 매서운 말과 고함으로 적개심을 화산처럼 품어내고 나서야 눈 앞에서 덜덜 떨고 있는 아이가 보인다고 했다. 친정 아버지에게 당한 폭력을 자신에게 화풀이한 친정 엄마에 관한 이야기를 감히 누구한테도 입을 열 수 없었다고 한다. 아니 자신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부인 했지만, 증오심은 사라지지 않고 친정 어머니와 그녀 사이에 늘 냉기류가 되어 흘렀단다. 엄마의 그림자조차 보고 싶지 않은 그녀의 적개심을 아이에게 물려주지 않으려고 힘 든 싸움을 하곤 했다.

 

그녀에게는 상담 자체가 고통이었다. 아픈 기억의 창고에서 까맣게 타버린 서러움을 끌어 낼 때마다 자지러지는 아픔의 눈물과 콧물을 닦은 화장지가 한 주먹이었다. 긴 세월 동안 부드러운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늙으신 어머니께 왜 그렇게 내게 아픔을 주셨냐고 따질 수만 있다면 속이 후련하겠지만… 이제는 마른 갈대 같이 생기 잃은 어머니에게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흘러버린 세월을 탓할 수 밖에 없었다 했다. 다행히 길고 긴 여행 도중에 비틀거리며 어머니를 찾아 뵐 때마다 어색함이 조금씩 덜어지기 시작했다고...  낯설었던 어머니가 조금씩 익숙해지고 마주치는 눈길도 부드러워져 갔지만, 무엇보다 엄마에 대한 분노가 자연스럽게 누그러지는 자신에게 놀랐다고 했다. …

 

만년설이 된 상처의 응어리가 다 녹은 것은 아니지만 손댈 수 없는 엄마의 일부분을 받아들이고 싶은 훈훈한 바람이 밀려왔다고 한다. 기억조차 희미하지만 겨우 몇 조각 남은 엄마가 물려 준 긍정적인 모습이 오늘날 자기를 있게 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다고 했다. 생기 없는 어머니가 있는 풍경들이지만 애써 따스함을 찾아내고 싶다고 했다. 힘들었던 지난 시간들을 견디어내며 자라는 아이의 모습에 감사하고, 아직도 손댈 수 없는 부분들이 마음에 남아 있지만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어했다. 나는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손댈 수 없는 부분’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그녀의 통찰력에 놀랐다.  상담을 하면서 내담자들 로부터 자주 경험하는 치유의 또 한 가지의 힘이 내게 희열로 다가 왔다.

 

  가톨릭대 안형관 교수는 인간은 각자 고유한 생각과 가치관, 감정상태와 행동양식 등 다양한 측면을 가지고 있는데 사람마다 ‘손댈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한다.  손댈 수 없는 부분을 어떤 사람은 단점이라고, 큰 문제점이라고, 고칠 수 없는 부분이라고 말하지만, 어떤 사람은 매력적이라고, 장점이라고, 특별한 부분이라고 말한다. 상담 교육학자 최경희 씨는 손댈 수 없는 부분을 ‘여백’으로 받아 들이길 권한다.  마치 동양화에서 여백과 그림이 조화를 이루듯이 그 부분을 고치거나 덧칠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오히려 더 건강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 수가 있다는 것이다. 빛 바랜 사진 속에 있는 보기 싫은 사람을 도려낼 필요는 없다.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어 사진첩에 간직해 두었다가 꺼내 보듯이 말이다.

 

아픔과 슬픔의 조각들을 원하는 대로 전부 고치려다 보면 오히려 너무 많은 삶의 에너지를 빼앗겨 삶의 균형을 잃게 된다. 마치 동양화의 여백을 채운 것처럼 답답하고, 생기를 잃게 된다.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상처는 상처로, 부끄러운 것은 부끄러운 대로 받아들이는 넉넉함이 삶의 조화를 이룬다. 모든 부분을 새롭게 고치려는 노력이 또 하나의 강박관념이 되어 어깨를 짓누른다.

 

   한국화에서는 배경을 칠 하지 않고 그대로 남겨 놓는 그림이 많다. 세한도 에는 세월을 낚는 강태공도, 천 년을 산다는 목이 긴 학도, 졸고 있는 강아지 조차 없다. 모든 것이 멈추었고, 시간도 멈춘 것 같다. 아낙들이 빈대떡 붙여 먹는 것도, 마실 가는 것도 번거로워 그냥 팔베개를 하고 잠을 청할 것 같다. 추사 김정희가 세한도 에서 그리려는 것은 나무들도, 초가도 아닐 것이다. 여백으로 표현된 그 어떤 것이 아닐까 싶다. 세한도의 여백을 채운다면 세한도는 아버지가 도와 주신 내 그림 앞에서 기가 죽을 것 같다.

 

  세한도 처럼 사람의 내면세계에도 손을 대지 않고 내버려 두어야 할 부분이 있다. 상담을 하다 보면 내담자들의 내면세계에 그 사람의 일생이 그림으로 채워져 있는 것이 보인다. 아픔과 슬픔, 좌절과 절망, 때로는 기쁨과 소망이 이렇게 저렇게 칠해진 곳도 있고, 텅 비어있는 곳도 있다. 그런데 내면세계의 그림이 균형을 잃을 때 상담자를 찾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내담자의 내면의 그림에 손을 대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이 오히려 조화로운 삶을 이어갈 수 있는 부분들이 있다. 상담을 마치고 돌아가는 내담자의 뒷 모습이 박완서님의 말을 생각나게 했다. “슬픔은 이길 수도, 극복할 수도 없어요. 잊기를 강요하지 말고 기다려 주어야 해요. 강요는 슬픔에 잠긴 사람을 더 힘들게 해요”

 

   팽팽하게 당긴 활처럼 슬퍼할 틈도, 분노할 여유도, 남을 원망할 이유 보다 일을 해야 할 이유를 먼저 찾아야 했던 내담자들의 기억 저편에 숨어 있는 상처와 숨바꼭질을 하다 보니 어느덧 내 인생에도 갱년기가 찾아왔다. 억압하고, 외면하고, 잊고 살았던 지난 날의 먹구름이 건강을 잃은 틈을 타서 반란을 일으킨다. 국립묘지에 누워계신 아버지께서 어느새 내 마음에 찾아 오셔서 오늘도 애써 겨우 지워놓은 삶의 여백을 다시 채우신다. 아버지께서 마음에 그려놓은 그림을 고쳤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살아나 이전보다 더 긴장하고, 더 숨막히도록 몰아간다. 중요한 일 앞에서는 준비하기도 전에 가슴이 콩콩 뛰어 심호흡을 자주 하게 된다. 행여 싫은 소리를 들을 까봐 귀를 틀어 막고 싶고, 부족함이 드러나면 창피할 까봐 전전긍긍하는 마음은 어느덧 더 작은 새가슴이 된다. 이젠…  아버지께서 덧칠하시면 그대로 바라 보아야겠다. 대신에…  아버지께서 남겨주신 따스한 그림 조각들을 찾아내서 빛이 나도록 먼지를 털고, 밝고 온기 있는 창가에 잘 보이도록 놓아야겠다. 그리고 올라가며 함박 웃고, 내려가며 까르르 웃던 균형 잡힌 시소를 내 마음에 만들어야겠다. 함께 놀았던 초등학교 친구들을 졸업 앨범 속에서 불러내어 시소를 타야겠다. 얘들아 놀자!

 

    이제는 눈 오는 날에 한 없이 게을러 보리라. 남편도 책상에서 끌어내려 꼼짝 말고 쉬라고 바가지를 긁어야겠다! 세한도 보다 더 깊은 적막한 그림을 우리 집으로 그리고 싶다.  하루를 천 년같이, 시간이 멈춘 긴 하루를 보내리라! 눈조차 숨을 죽이고 내리는 한 폭의 그림이 되고 싶다. 눈 오는 날에는 강아지 똘이야, 고양이 티거야, 너희들도 밥도 먹지 말고 함께 낮잠을 자자! 올 겨울에 지겹게 눈이 내렸는데도 오늘은 눈이 기다려진다! 그런데 소리 없이 내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