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 에세이

 

상담가  임옥순

                   

한 여름 밤의 꿈과 자주 감자

 

감자 꽃

   - 권태응 시 -

자주 꽃 핀 건 자주 감자

파보나 마나 자주 감자

하얀 꽃 핀 건 하얀 감자

파보나 마나 하얀 감자

 

어둑어둑해지는 긴 여름 해질 무렵에 천정과 벽 사이에 얹혀 있는 커다란 이불을 혼자서 어떻게 정리해야 할 지 몰라 무척이나 심난해 하다가 꿈에서 깨어났다. 어린 꼬마 소녀의 삶이 힘들면 얼마나 힘들다고 꿈속에 커다란 이불이 나타났을까? 어둠이 깃든 방안에는 아무도 없고 마루에서 늦은 저녁 식사하는 식구들의 인기척 소리가 들렸다. 으슬으슬한 몸살 기운 때문에 저녁밥을 포기하고 다시 잠을 청했지만 쉬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다가 이른 새벽 살포시 잠이 들었나 보다. 이튿날 엄마가 부르는 소리에 무거운 몸을 추스르며 일어나 엄마를 따라 웃냇갈 감자 밭으로 향했다. 마지못해서 호미와 바구니를 들고 따라 나섰지만 감자 줄기를 힘껏 잡아당겨 흙 속에서 자주색 감자가 뽑혀 올라올 때면 그 신비한 색에 반하곤 했다. 일하기 싫은 탓도 있지만 자주 빛깔에 마음을 빼앗겨 게으름을 피우는 동안 어머니의 땀방울은 어느덧 바구니에 자주 감자를 가득 채웠다. 한 여름날에는 게으름도 일이었던지 자주색 꽃 감자 줄기를 당길 때마다 모습을 드러내던 자주 감자를 헤아리다 보니 어느새 내 이마에도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전날 으슬으슬하고 묵직한 몸살 기운이 땀방울에 씻겨 나갔는지 가뿐해졌다. 한 여름 초저녁 꿈이 주었던 심난함도 어느덧 말끔히 사라졌다. 자주 빛깔이 그날은 엄마의 약손이었나 보다. 어른말씀 들으면 일하다가도 병이 낫나 보다.

 

 상담을 마치려니 '책거리'가 생각이 났는지 커피 향이 물씬 풍기는 커다란 커피 케이크를 조심스럽게 들고 마지막 상담을 받으러 온 한 내담자가 생각난다. 그 동안 살얼음 위를 걷듯 달려온 길에 비하면 케이크 상자 들고 오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닌 듯이 그녀가 맑게 웃으며 상담소에 들어섰다. 유난히 눈물이 많은 여인, 모난 성격이라서 자기도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아 속상한데 출장 자주 가는 남편, 짐이 되는 아이들, 주변 사람들까지도 자기를 까시럽다 할 때는 분노를 삭일 수 없었단다.  이웃들이 등을 돌릴 때마다 분을 삭이려 하면 할 수록 견딜 수 없이 외롭고 고독했다 한다. 자기가 찔레꽃 가시마냥 사람들을 찌르고, 고슴도치 가시처럼 접근도 못하게 해놓고서는 커지는 불안과 밀려오는 외로움에 지칠 대로 지쳐 상담 받기 시작했다. 마음에 담긴 생채기들과 돌처럼 단단해진 아픈 응어리 때문에 입 밖으로 나오는 말마다 가시 돋친 말이 되어 다른 이들의 마음을 멍들게 했으니 가족인들 가까이 하고 싶었을까?

그녀의 가시 돋친 말 습관의 뿌리는 엄마가 자기를 버렸다는 느낌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는 어머니의 절망적인 넋두리, 다른 집으로 입양 보내려고 했다는 어머니의 싸늘한 말이 깊이 뿌리를 내렸던 것 같다. 엄마가 스르르 잡았던 손을 놓았었던 느낌이 마음 깊은 곳에서 울라 올 때마다 화를 억제 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아차리며 인정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또한 배 다른 남동생에 대한 분노가 자기 아들에게 전이 되어 자기도 모르게 아들에게 심한 분노를 퍼부었던 죄책감으로 너무도 고통스러워했다. 뿌리가 워낙 깊어 마음의 심연 저편까지 살피는데 길고 슬픈 탐색이 필요한 여인이었다. 

 좋은 엄마가 되고 싶은 그녀는 아픈 이야기를 드러낼 때마다 이글거리는 분노가 건드려져 자책감과 좌절감으로 힘들어 했다. 만사가 귀찮아지고, 이유 없이 혈기가 올라오면 아이를 마구 대했던 기억이 떠올라 몇 번이나 상담을 포기하려고 했었다. 상처로부터 자유로워지려는 마음은 급하지만 급한 만큼 덜컥덜컥 넘어지기 일쑤 였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에게 거침 없이 상처 주는 말을 속사포처럼 쏘아 대고 이성을 잃을 만큼의 독을 품어 내면서도 현실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의지 또한 강했다. 더 이상 아이들에게 겁을 주지 않으려는 열망도 컸기에 통찰의 아픔을 통해 통찰의 열매를 거두어가기 시작했다. 자주 색 감자 줄기 하나를 붙잡고 조심스럽게 뽑아 올리면 큰 것부터 자잘한 새끼감자까지 올라오듯 큰 아픔과 작은 상처들이 하나 둘 치유 되면서 조금씩 긴장감에서 벗어났다. 시원함과 허전함, 허탈감과 억울함, 분노가 그녀의 얼굴에 반복되어 나타나곤 했었지만 그녀는 엄마 본래의 사랑스런 모습을 조금씩, 생기 있는 여인의 모습을 서서히 회복해갔다.

    칼 로저스는 인간마다 현실을 각기 달리 지각하고 주관적인 경험이 행동을 지배한다고 믿었다. 즉 사람은 외부현실 보다는 오히려 내부적인 경험에 의해 이끌어 진다는 것이다. 이 말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이해가 가능하다. 인간의 내면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그의 행동을 보면 알 수 있다는 뜻과 동시에 한 개인의 행동을 이해하는 방법으로 그의 내면세계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나아가 내면세계를 바꾸어 놓으면 그의 행동도 바꿀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즉 감자 꽃을 보면 땅속에 있는 감자의 빛깔을 알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며, 감자의 색깔을 보면 그 감자가 어떤 꽃을 피우게 될지 알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자주 꽃 핀 건 자주 감자/ 파보나 마나 자주 감자' 라는 구절에서 시인이 하고자 했던 것은 감자가 아니라 인간의 내면세계와 행동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칼 로저스는 오랜 임상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인간은 기본적으로 자유로우며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고, 목적을 가지고 있으며, 합리적이고 건설적인 방향과   지속적으로 성장해나가는 미래지향적 존재라고 보았다. 따라서 이러한 선천적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는 조건들이 적절히 갖추어진다면 인간은 무한한 성장과 발전이 가능하다고 결론지었다.  로저스는 인간의 삶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어떤 힘에 의해 조종당하는 피동적 삶이 아니라 각 개인이 자유로운 능동적 선택의 결과라고 보았다. 로저스는 모든 인간이 자신의 내부에 자기이해, 자기개념과 기본적 태도의 변화 및 자기 지향적 행동을 위한 거대한 자원을 갖고 있다고 하였다. 이러한 선천적 능력의 표현이 바로 자아실현경향이다. 로저스는 자아실현경향을 자기충족, 성숙의 방향을 지향하는 모든 동기를 포함하는 각 개인의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추진력이라고 규정하였다. 로저스는 이러한 자아실현의 경향을 성취하기 위하여 인간은 항상 노력하고 도전하고 어려움을 극복함으로써 진정한 한 개인이 되어간다고 보고 있다.

 

   칼 로저스가 말하는 거대한 자원을 나는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부르고 싶다. 비록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형상이 온전한 모습을 잃었지만 인간 안에는 고고하고 영롱한 자주 빛깔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고통과 상처와 아픔을 서로 주고받으면서도 자주 빛 꽃을 피우기 원해 상담소를 찾고 여기 저기 도움을 청한다.

 

상담을 하다 보면 자주 감자가 자주 생각이 난다. 자주 감자는 어떻게 깊은 흙 속에서 신비로운 자주 색이 만들어질 수 있을까! 대지를 달구는 한 여름 흙 속에서도 저렇게 아름답고 고상한 빛을 잃지 않고 고이 간직되어 있었을까? 신비하고 고고한 자주 빛깔이 억울해서 어떻게 흙 속에 묻혀 있었을까? 상처와 아픔 속에서도 우리들의 생명 안에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 없어지지 아니하고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었다는 것이 신비롭고 감사할 뿐이다. 우리 인생들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셨기에 상처로 인하여 비록 온전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거룩하고 영롱한 하나님의 형상을 간직하고 있음을 믿는다. 오늘도 그 영롱하고 거룩한 하나님의 형상이 만들어내는 아름답고 거룩한 행동을 기대하며 내담자와 함께 울고 웃는다. 상담을 마무리 하고 나면 감자 밭에서 자주 감자 꽃을 찾아 그 줄기 밑에 주렁주렁 달린 자주 감자 한 포기를 쏙 뽑아 낸 느낌이 나를 흥분시키곤 한다.

 

그런데 이런 느낌을 체험하기 전에는 자주 색을 좋아하면서도 자신 있게 내가 좋아하는 색깔이라고 드러내지를 못했다. 마치 좋아하는 색상의 옷을 구입해 놓고 내가 소화할 수 없는 색상 같아서 옷장에 넣어둔 옷처럼 말이다. 자주 색에는 부드럽고 여성스러우며 화려한 이미지와 신비하고 창조적인 뜻이 있다 한다. 하지만 자주 색이 주는 또 다른 느낌, 곧 불안, 공포, 외로움, 가련한 느낌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던지 자주색이 내 시선을 사로잡아도 애써 나는 자주색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거부하고 회피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제는 내 속에 있는 자주색에 대한 숨겨둔 사랑을 고백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동안 자주 색을 가까이 하지 못하고 멀리서 지켜보았지만 오랜 세월 자주색을 품고 있었기에 어느 덧 내 마음도 자줏빛 물이 들었나 보다. 나의 상처도 조심스럽게 자주 감자 뽑듯이 뽑았다는 느낌이 크게 와 닿자 한결 나의 모난 성격도 둥글둥글해진 것 같다. 올 여름의 가장 큰 수확은 나의 마음속에 담겨 있던 자주 감자를 인정하고 받아들였으니 올 가을에는 풍년가를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어~언제나…. 조국 고향 마을 감자 밭을 다시 찾을 수 있을지, 그 때가지 친정어머니께서 생존해 계실지 알 수 없지만 다시 자주 감자 밭을 찾을 때는 게으름 피우지 않고 열심히 자주 감자를 캐고 싶다. 친정어머니의 베적삼이 흠뻑 젖기 전에 내가 바구니를 가득 채워야겠다. 이번 가을에는 자주색 옷도 용기 있게 걸치고, 남편이 사준 자주색 머플러도 더 자주 걸치고 상담소를 향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