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 에세이

 

상담가  임옥순

                   

얘들아! 칡 캐러 가자!

 

겨울과 봄이 서로 힘겨루기를 하는 2월 말, 아직은 겨울 끝자락이 남아 있지만 아이들은 좀이 쑤시고 몸이 뒤틀려 참을 수가 없다. 이때쯤이면 화롯가의 고소한 군밤 맛도, 부엌 아궁이에서 피식피식 소리를 내며 익어가는 군고구마의 구수한 냄새도 아이들을 집에 잡아두기에 힘이 부친다. 엄마 몰래 곡간에서 꺼내 먹던 정월 대보름 음식과 왕겨 속에 보관하던 사과, 배도 엄마가 알아차릴 만큼 줄어 더 이상 손을 댈 수가 없다. 그리고 유과, 약과, 오꼬시, 샘비과자도 이미 바닥이 나고 없다. 눈 속에 묻어 두었던 고구마를 꺼내서 입이 얼얼하도록 씹어 먹던 아삭아삭한 맛도 이제는 시들해져 구멍이 숭숭 뚫린 창호지문으로 아이들의 심심한 입을 가둘 수가 없다. 엄마의 걱정 섞인 잔소리를 뒤로 하고 찬바람이 몰려다니는 집 밖으로 아이들이 몰려나간다. 아직 응달에는 잔설이 남아있고, 바람이 허름한 옷을 섬뜩하게 파고들지만 아이들은 새로운 주전부리를 찾기 위해 괭이, 삽을 들고 친구네 집 뒤뜰 언덕배기와 동네 앞 양지바른 철새 밭으로 씩씩하게 몰려간다. 아이들은 철 따라 자연이 주는 선물이 어디에 있는지 잘 알고 있다.

 

양지 바른 산기슭 칡덤불 아래에 잔뜩 쌓여 있는 낙엽을 걷어내면 이미 힘을 잃은 서릿발이 보인다. 서릿발을 걷어내고 괭이로 살짝 언 흙을 찍어내면 칡뿌리 머리가 모습을 드러낸다. 이리저리 땅속으로 파고들어간 칡뿌리를 따라서 돌을 골라내고, 흙을 파내려 가면 먹음직스러운 칡뿌리를 얻을 수 있다. 재수 좋은 날은 어른 팔뚝만한 알이 배긴 칡뿌리를 캘 수 있다. 칡뿌리에 묻어 있는 흙을 바지자락에 쓱쓱 문질러서 대충 흙을 털어내고 한입 물어 잡아당기면 쭉 찢어진다. 볼이 터지도록 입에 넣고 꼭꼭 씹으면 쌉싸롬하면서 달콤한 칡 맛이 입안 가득해진다. 흙 속에 묻혀 있는 달콤한 맛을 찾아 아이들은 언 땅을 파헤치며 겨울을 저 만큼 밀어낸다. 그렇게 낮은 산들로 둘러싸인 작은 농촌 마을의 겨울은 아이들에게 등 떠밀려 철새를 따라 북으로 길을 떠난다.

 

꽁꽁 언 땅 밑에 숨을 죽이고 있던 알 칡뿌리가 부지런한 아이들의 손에서 모습을 드러내듯이 상담을 하다 보면 얼어붙은 마음속에 달콤한 선물들이 감추어져 있는 내담자들을 본다. 냉혹한 현실 앞에서 마치 추운 겨울처럼 몸을 움츠리고 살아가지만 마음 깊은 곳에는 다양한 재능이 있음을 발견한다. 하지만 그것을 모른 채 눈보라 치는 겨울만 계속되는 동화에 나오는 키다리 아저씨처럼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머리를 좌우로 흔들어 보아도 머릿속은 짙은 안개 같고, 수건으로 질끈 동여맨 것처럼 머리는 둔하고, 가슴은 답답해 죽겠다며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청년이 찾아왔다. 요즘 흔히 쓰는 말로 ‘귀차니즘’ 이란 표현이 그에게 딱 맞을 것 같다. 상담 횟수가 늘어나면서 윤기가 없던 까칠한 얼굴이 점점 맑아지고, 표정이 없던 얼굴에 다양한 감정이 어른거리며, 상담에 임하는 태도도 진지해져갔다. “그러고 보니 제가 태어날 때부터 게을렀던 게 아니네요. 저도 원래는 사랑 받을 만한 존재였다는 거죠? 제가 특별히 좋아하는 색깔과 음식이 뭔지 궁금해요. 무엇보다 제 속에 묻혀 있는 보석을 캐고 싶은데 그게 뭘까요? 제가 캐야 되는 거지요?”마음이 열리고 입이 열리면서 귀찮아하고 미루는 습관에서 더디게 빠져 나오고 있다.

 

그에게 있어서 게으름의 정체가 무엇일까? 어릴 때에 헤어진 엄마가 보고 싶어 울며불며 보챘지만 채워진 건 아빠의 호된 꾸중 일 뿐 아무 소용이 없었다 한다. 보고 싶은 엄마에 대한 계속 좌절된 그 욕구는 '엄마는 나를 사랑하지 않나 보다’, 거절하는 아빠에 대한 분노는 ‘내가 못나서 그렇구나, 내가 미워서 그렇구나,’라는 자기 비하로 나타났던 것 같다. 또한 엄마 없는 하늘 아래서 ‘이젠 나를 사랑하는 사람도, 나를 도와줄 사람도 없다’ 는 불안과 두려움이 그를 사로잡았던 것 같다. 자기 자신에 대한 미움과 두려움은 낮은 자존감과 낮은 자신감으로 내면화 되었고, 마침내 자기 표상으로 굳어졌다. " 나는 원해도 얻을 수 없구나.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구나, 나는 못하는구나! 어떤 일을 못해서 창피를 당하는 것보다 안 하는 것이 안전한 길이다." 결국 두려움이 게으름으로 나타났고 계속된 게으름은 내면화되어 모든 일을 귀찮아하는 삶의 패턴이 형성되었던 것이다. 게으름이 그의 습관이 된 것이다.

 

이와 같이 과거의 경험은 단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흔적을 남긴다. 과거의 반응이나 경험이 남긴 이것을 스키마(Schema)라 한다. 스키마는 사전지식, 배경지식, 지식 구조(knowledge structure), 본(scripts), 틀(frames) 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스키마는 경험이 만든 사고의 틀이라고 하겠다. 부적응적 스키마와 핵심믿음은 인간의 인지구조에 영향을 주는데 이러한 영향이 계속될 경우 결국 인지구조의 근본적인 변화를 초래하는데 이를 ‘인지왜곡’이라 한다. 핵심믿음이란 개인이 갖고 있는 자신, 타인, 그리고 세상에 대한 가장 중심적인 생각을 말한다. 인지왜곡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고, 듣고 판단하지 못하게 한다. 이러한 인지왜곡이 일상생활에서 자신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자동사고’ 라고 부른다. 앞에 말한 내담자의 경우 거듭된 욕구의 좌절이 ‘나는 할 수 없다’는 핵심믿음을 심어주었다. 이 핵심믿음은 인지왜곡을, 인지왜곡은 자동사고를, 자동사고는 어떤 상황이던 무의식적으로 '나는 할 수 없다, 그래서 안 한다'라는 삶의 습관을 만들었던 것이다.

 

짧은 말로만 답하던 자신의 이야기를 조금씩 긴 문장으로 말하게 하고, 좀처럼 표현하지 않던 감정적인 단어들을 자주 사용하도록 훈련해 보았다. 계속해서 억압했던 감정을 인식하도록 묻고 또 묻기를 반복하다 보니 “상쾌하다.”편안하다.” ”외로웠다.” “슬펐다.” “ 답답했다.” ‘화가 났다.” ‘섭섭했다,” 등등의 감정들이 쏟아져 나왔다. 무섭고 혼날까봐 꾹꾹 눌러두었던 어린 시절의 감정들이 이러한 단어를 통해서 조금씩 표현되기 시작했다. 또한 반복적으로 귀찮아하는 마음이 들면 왜 귀찮아하는 그 마음이 드는지를 알아차리도록, 일을 뒤로 미루려고 하는 마음이 들면 왜 미루려고 하는지, 그런 마음을 알아차리도록 훈련을 계속 했다. 자신이 태어날 때부터 귀찮아서 미루는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도 인식하게 했다. 자신도 모르게 미루고 게으름이 밀려오는 순간을 알아차리고 그 순간에 인지왜곡을 수정하는 훈련을 반복해서 하다 보니 귀찮아서 미루는 일이 조금씩 줄어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희망을 말했다. “ 이렇게 자꾸 반복해서 하다 보면 지겨운 게으름도 없어지겠네요. 선생님 말씀처럼…” “그럼, 충분히 벗어 날 수 있지.”

그에게 얼마든지 게으름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큰 소리를 쳤지만 나도 두렵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를 상담하면서 슬며시 내 게으름이 내게 시비를 걸어 왔기 때문이다. "사돈 남 말하고 있네! 나도 아직도 게으르잖아' 정신과 닥터 스갓펙은 그의 책에서 '게으름의 가장 큰 원인은 두려움이다'라고 했던 기억이 났다. 맞다! 이 보다 더 내 게으름을 아주 명확하게 이해 시켜주는 말이 있을까! 그 두려움은 내게는 강박증으로 모습을 드러내곤 했다. 앞의 내담자는 실패가 두려워 시도도 하지 않는 게으름으로 나타났지만, 나는 힘들게 시도는 하지만 동시에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늘 그림자처럼 따라 다녔다.

 

내 두려움의 뿌리는 용궁에서 시작된 것 같다. 초등학교 연극반에서 심청이 역을 어설프게 한다고 심청이 역에서 밀려났는데 그 일이 두고두고 잊히질 않았다. 검푸른 바다에 연꽃에 쌓여 피어날 왕비의 꿈이 좌절되었던 아픈 그림자가 오늘도 일을 앞두고 긴장하게 한다. 다른 한 뿌리는 졸업식이었던 것 같다. 초등학교 졸업식 예행연습을 하는데 재학생을 대표해서 송사를 낭독하게 되었다. 그런데 "정든 교실을 떠나는 언니 오빠들..."이라는 부분을 읽다 그만 눈물샘이 터져서 더 이상 송사를 낭독하지 못하고 많은 선생님들과 학생들 앞 단상에서 내려와야 했다. 졸업식 날 눈물샘이 터졌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심청이 아버지와 해후할 때에 눈물샘이 터졌다면 실감나는 연기를 했을 텐데... 그런 일 이후로 중요한 일만 시작하려면 새 가슴이 되어 콩닥거린다. 실패를 거듭하지 않기 위해 마음 졸이며 준비 하고, 또 준비 하지만 자신감은 늘 저 멀리 뒤따라온다. 조선을 구했던 이순신 장군의 유비무환도 인지 왜곡 앞에서는 내게는 단지 액자에 담긴 사자성어에 불과했다. 거북선이라도 만들어 타고 다니면 좀 나아지려나!

 

건강 탓인지, 갱년기 탓인지 요즘 들어 더 자주 가슴이 콩닥거린다. 칡청이 갱년기에 좋다 해서 보약 먹듯이 정성껏 마시는데 마실 때마다 어린 시절 칡뿌리를 씹던 그 향이 입안에서 되살아 난다. 칡청이 목 줄기를 타고 내려갈 때마다 마음 깊이 숨겨놓았던 기억들이 하나하나 모습을 드러낸다. 두려움에 뿌리를 두고 있는 강박증과 게으름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기 위해 진한 칡청 한 잔 더 마시며 두 손을 불끈 쥐어 본다. 꽁꽁 언 땅에서 칡뿌리를 캐듯이 서릿발 같은 냉소적인 마음이 걷히고, 얼어붙은 마음이 녹으면서 숨겨진 찬란한 보석들이 오는 봄에는 하나하나 영롱한 모습을 드러냈으면 한다. 물이 잔뜩 오른 칡뿌리를 한 입 물었을 때처럼 달콤함이 온 몸을 채우듯이 모습을 드러낸 보석들이 우리의 삶을 더 달콤한 맛으로 채워주길 기대 한다. 달콤한 칡청이 두려워하는 마음을 다정하게 토닥거리며 한 마디 거든다. “ 괜찮아! 실수 좀 하면 어때, 한두 번 실수 한다고 하늘이 무너지기라도 하는가? 숨을 죽이고 때를 기다리던 내 보석들이 있지 않는가?” 그렇지! 심청이 역 좀 못하면 어때! 내가 왕비보다 더 아름다운데! 올 봄에는 나른함도 즐겨보고 좀 더 능청도 부려보자.

 

“얘들아! 칡 캐러 가자! Wake up! Wake up! 아지랑이 피어 오르는 봄이 저기 오고 있다. 노고지리도 봄을 재촉한다. 소 치는 아이도 깨워야겠다! 나물 캐러 가는 여자 얘들도 깨워야겠다. 그들은 밭을 갈고, 나물을 캐고, 우리는 칡을 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