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 에세이

 

상담가  임옥순

                   

아~아! 그랬었구나!

 

부제: 오호 애재(嗚呼哀哉)라, 못  다 가져온 모시송편이여!”

 

  7년 만에 방문한 친정, 올 해 팔순이신 어머니는 미국에서 온 오십이 넘은 딸을 위해 백 개 남짓한 모시송편을 사랑 가득 가득 채워 초승달처럼 예쁘게 만드셨다. 친정어머니께서 멸치, 오징어, 뽕잎, 고사리 등등 바리바리 싸주신 짐을 챙기다 보니 밤늦도록 정성스럽게 만들어 주신 모시송편을 다 가지고 올 수가 없었다.

 

미국에 돌아와 짐을 풀기가 바쁘게 모시송편 몇 개를 찜통에 쪄서 한 개를 입에 넣었다.  돈보콩과  모시 향이 어우러진 모시송편의 익숙한 고향 맛이 입 안에 가득 찼다. “그래 이 맛이야!” 모시송편 향이 퍼지듯 편안함과 만족감이 쏘옥 몸 안으로 들어와 온화하고 부드럽게 몸 내부를 쓰다듬듯 지나가면서 긴장했던 근육과 신경이 스르르 풀렸다. 만족스러운 맛에 흥분되어 몇 개를 더 입에 넣었다. 그런데 갑자기 입 안에 가득했던 향긋한 맛이 점점 사라지더니 텁텁하고 칼칼한 맛이 목에 걸리기 시작했다. 순간 못 다 가져온 모시송편이 내 눈 앞에 클로즈업 되었다. 이내 몽땅 다 가져오지 못한 아쉬움과 아까운 마음이 올라오고 몸의 일부를 떼어놓고 온 것 마냥 마음이 싸~아 하니 침울해졌다. 입에서 시작한 불편한 맛, 이내 머릿속이 텅 비는 느낌, 내면 깊은 곳에서 밀려오는 내장들의 파르르한 떨림, 가슴의 거침없는 콩닥거림, 얼굴의 화끈거림, 흐릿한 안개 같은 불안이 스멀스멀 온 몸에 퍼지면서 마음을 휘저었다. 특산물 가게에 가면 쉽게 구할 수 있는 모시송편인데 왜 이렇게 아까울까? 못 다 가져온 모시송편을 항공편으로 보내달라고 할까? 다시 한국에 갈 때까지 냉장고에 보관하라 할까? 아니면 미국으로 오는 인편에게 좀 가져다 달라고 부탁을 할까?

 

“아깝다 모시송편이여!  오호 애재(嗚呼哀哉)라, 못 다 가져온 모시송편이여!”

 

그런데, 못 다 가져온 모시송편이 화나도록 아까운 이유가 뭘까? 평소 모시송편을 특별히 좋아한 것도 아닌데… 도대체 뭘까? 못 다 가져온 모시송편이 내 마음 어딘가에 움츠리고 있던 상처를 건드렸는지 그 동안 억압당했던 감정들이 꿈틀거리며 겨우 지탱해 오던 마음의 균형을 흔들어 놓았던 것 같다. 세포 하나하나에까지 전류 흐르듯이 휘저으며 흐르는 불편한 느낌은 어떤 언어로도 명확하게 정리할 수가 없어 그저 가슴이 먹먹하고 답답한 상태가 진정되기만을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몇 날이 지나도 모시송편이 몰고 온 마음의 폭풍은 쉽게 잦아들지 않았다.  지난 여름 밤마다 대학 다니는 딸 아이와 동네 공원을 돌면서 나도 모르는 내 속의 불안해 하는 나를 살살 달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늦은 밤 공원을 걸으며 딸이 좋아하는 만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딸이 어릴 때 자주 보았던 슐츠의 만화 피너츠<PEANUTS BOOK>가 생각이 났다. 주인공 찰리 브라운과 단짝을 이루는 라이너스는 배냇담요를 늘 가지고 다닌다. 스누피 역시 밥그릇을 가지고 다닌다. 그런데 라이너스와 스누피 같이 특정한 물건에 집착하는 아이들을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그래, 바로 이거였구나! 이거였어!“

 

  소아과 의사이자 정신분석가인 도날드 위니캇은 “아이들은 태어나서 피부로 접촉했던 어머니에 대한 애착을 가지게 되고, 아이들이 어머니로부터 멀어질 때에 아이들은 애착의 대상으로서 특정 물건에 집착할 수 있다. 어머니와 신체적 접촉을 가질 수 없을 때에 아이들은 어머니를 느낄 수 있는 물건을 가지는데 이를 중간대상이라 한다. 애착대상들은 아이가 엄마로부터 독립해서 처음으로 복잡하고 낯선 세상에 나갈 때 혼자 견딜 수 있게 해주는 버팀목이 된다. 중간대상인 곰 인형, 아기 이불 등은 이제 사물을 넘어 아이에게 일정기간 심리적 위안을 심어주고 용기를 북돋아주는 어머니 같은 존재가 된다.”고 했다. 그래서 중간대상인 아이들의 아기 이불, 곰 인형을 엄마 마음대로 바꾸거나 세탁하거나 버리면 아이는 더 불안해 한다.

 

 내가 모시송편을 중간대상으로 느꼈나 보다. 여든이 넘으신 친정 어머니를 두고 미국으로 오려니 몹시 미안했었나 보다. 언제 다시 뵐지 알 수 없는 친정 어머니, 어쩌면 살아서는 다시 뵐 수 없을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감소 시키기 위해 친정 어머니 손맛이 담긴 모시송편에 친정 어머니가 담겼나 보다. 그러니, 놓고 온 모시송편이 아까울 수밖에… 괜히 잔뜩 가져온 뼈대 있는 집안(?) 멸치만 미워했었다.

 

“왜 멸치를 잔뜩 가져 왔을까! 모시 송편을 다 가져왔어야지!”

 

언제였는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아이였을 때 분리불안을 경험 했었나 보다.

“낳아놓고 또 딸이라고 아버지가 외면이라도 하셨나?””바쁜 농사철에 어머니가 젖먹이는 것을 잊으셨었나?”

마음 깊이 자리했던 분리불안을 모시송편이 풀어 놓았나 보다.

 

상담을 하다 보면 분리불안으로 힘들어 하는 내담자들을 자주 만난다. 오래 전에 쉰이 넘은 한 여인이 남편의 외도로 화병을 가누지 못해 상담을 받으러 왔다. 그녀는 신체적으로도 아주 약한데다가 남편이 떠날까 불안해서 더 힘 들어 했다. 몇 년 전에는 공황장애, 폐쇄공포증, 강박관념 증세로 약 복용과 상담 받은 경험이 있었다며 간신히 견디고 있었다. 그녀는 집을 떠나 낯선 곳에 가기를 두려워하는 불안발작을 일으킨 경험 때문에 집을 나서면 이런 불안이 다시 나타날까 두려워하는 예기불안을 갖고 있었다. 백화점, 시장 등 사람이 많은 곳, 넓은 장소, 다리 터널 같은 좁은 곳에 가는 것을 두려워했다.

 

운전하기도 부담스러워 남편에게 도움을 청했고, 때로는 남편이 가까이 있지 않으면 불안해 했다. 어릴 때 엄마 손을 꼭 잡고 먼 길을 가던 중 갑자기 엄마가 손을 스르르 놓아버렸던 그 순간이 도저히 잊혀지지 않는다며 흐느껴 울었다. 이미 존재하지 않는 엄마에 대한, 그 때 그 느낌이 두려움을 갖게 했었다는 것을 발견하고 점점 마음이 안정되면서 분리불안의 공포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우리 집 늦둥이(?) 겁 많은 치와와 “똘이”를 보면 안쓰러울 때가 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피피를 시키려고 뒤뜰로 데리고 나가면 곧장 집으로 달려 들어오곤 한다. 똘이는 10년전에 우울증 진단을 받아 똘이와 잘 놀아 줄 아이들이 있는 집에 보내라는 수의사의 처방을 받고 우리 집에 오게 되었다. 세 번이나 주인이 바뀐 경험들이‘똘이”에게 불안정 애착과 분리불안을 안겨 주었던 것 같다. 불안정 애착을 경험한 “똘이”가 나와 떨어지는 것을 불안해 해서 평소에 하지 않던 행동을 하곤 한다. 출근하려고 집을 나서면 악을 쓰고 짖는다. 평소에 나를 자기보다 서열이 낮다 여겨 무시할 때는 언제고, 출근 때면 떨어지기 싫어서 아침부터 집안을 시끄럽게 만든다.

 

그러고 보니 똘이나 상담가인 나나 사랑 받고 싶은 마음은 같네.... 상담가들도 감정을 가진 정서적인 존재이기에 공항장애를 가끔 경험하곤 하는데, 나도 예외는 아니었나 보다. 나의 무의식 속에 남아 있던 분리불안을 못 다 가져온 모시송편이 건드리면서 여름 내내 내 삶이 흔들린 듯 했다. 그렇다고 오십이 넘은 내가 인형을 가지고 다닐 수는 없지 않는가? 어릴 때 의존해야 할 애착대상과 멀어졌다는 느낌과 사랑하는 가족들과 떨어져 살아야 하는 이민 생활에서 마주치는 낯선 두려움들, 많은 사람들과 만났다 헤어지면서 맛 보는 쓰라린 아픔, 점점 약해지는 건강, 매일 마주하는 내담자들의 아픔을 들으면서 평안을 찾기 위해 중간대상이 필요했나 보다.

 

“아~ 아! 그랬었구나!’

 

불안의 정체를 깨닫고 나니 못 다 가져온 모시송편에 대한 아까운 마음이 서서히 사라졌다. 지난 추석에는 먹기도 아까워서 냉장고에 보관 중인 몇 개 남짓한 모시송편을 좋아하는 사람과 나누어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똘이야! 스누피가 끝내 밥그릇을 놓지는 못하지만 점점 똑똑해지고, 글도 쓰고, 변호사, 의사, 심지어 전투기 파일럿 놀이까지 하지 않니? 라이너스도 배냇담요를 늘 들고 다니지만 성서에 해박해지고 철학자와 과학자같이 지혜로워지듯이 너도 나도 좀 멋있어지자! 그리고 올 가을에는 우리도 분리불안을 떨쳐버리자! 네게는 내가 있고, 내게는 사랑하는 남편과 아이들이 있지 않는가? 하나님이 있지 않는가? 하늘 아래 불안할 이유가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