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 에세이

 

상담가  임옥순

                   

왜 사냐고 묻거든 웃지요

 

패밀리 터치 부원장님께서 지난 폭설이 내린 다음날 West Mountain에 오르셨다 한다. 산등성을 깎아낼 듯 몰아치는 겨울 바람에 어지럽게 흩날리는 눈발 속을 헤치고 무릎까지 빠지는 눈 위에 길을 내며 산에 왜 오르셨을까? ‘당신은 왜 산에 갑니까?’ 1924년 최초로 에베레스트 산 을 정복한 말로리가 원정을 떠나기 전 필라델피아의 한 강연에서 어느 기자가 질문한 내용이다. 이에 말로리는 ‘Because it is there(산이 거기 있어 산에 오른다)’라고 답했다 한다. 아직은 알피니스트들의 마음을 충분히 헤아리진 못하지만 지난해 등산화도 마련하고, 등산복을 사게 만든 동기와 비슷하다면 부원장님께서 웃으시지 않을까 싶다. 산을 오르는 이마다 이유가 다를 텐데 어찌 몇 단어로 설명할 수 있을까? 산에 가는 이유를 답하기도 쉽지 않은데 사는 이유의 답을 어찌 정리된 몇 마디로 답하겠는가?

김상용 시인은 “南으로 窓을 내겠소” 를 이렇게 끝을 맺고 있다.

“왜 사냐건/ 웃지요.”라고….

 

그런데 이 시는 이백의 한시 “산중답속인(山中答俗人)”에서 가져온 듯하다. 문여하사서벽산(問余何事棲碧山) “묻노니 그대 왜 푸른 산에 사는가?”

소이부답심자한(笑而不答心自閑) “웃을 뿐 그저 대답하지 않으니 마음이 절로 여유롭네.”

 

하루가 다 지나도록 하늘 한번 볼 여유 없는 현대인들이 깊은 사색의 결과를 한 줄 시로 남긴 청산에 사는 시인의 마음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을까 마는, “소이부답심자한(笑而不答心自閑)”이라는 구절은 알들 말듯 미소를 짓게 한다. 마음과 마음으로 전해지는 염화미소쯤 되지 않나 싶다.

 

새해 첫날 문득 사는 이유를 생각해보았다. 왜 사느냐는 질문을 하던 하지 않던 인간의 삶 속에서는 대단히 중요한 질문이다. 정리된 답을 하지 못해도 크게 문제 되지 않은 것이 많지만 삶은 그렇지 않아 의식하던 의식 하지 않던 답을 가지고 산다. 주어졌으니 사는가? 삶이 앞에 있으니 사는가? 아무 생각 없이 사는가?  답을 가지고 있지 않을 때의 삶은 고통스러울 수 밖에 없다.

 

고등학교를 졸업 하자마자 미국 생활에 뛰어들어 마음 고생하다가 상담소에 찾아와 “내가 왜 여기에 와 앉아 있는지 모르겠다.”며 멋쩍어 하며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였던 한 청년이 생각난다. 상담을 하면서 5살 때 헤어진 엄마가 보고 싶어 떼를 쓰며 아빠한테 매달렸지만 매정하고 무심하셨던 아빠에 대한 분노와 자신을 떠나버린 엄마에 대한 억압된 분노의 감정을 묻어버리고 살았던 시절을 기억하기 시작했다. 상담 초기에는 “머리가 멍하다, 도망가고 싶다. 마음을 휘저어놓고 나 보고 어쩌라고..”라는 말을 자주 했다. 상담이 계속되면서 이야기 내용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 뭔가를 해야 되겠다는 생각하기 시작했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준비를 해야 하는지 몰라 답답해 하며 힘들어했다.

 

어렸을 때부터 엄마 없이 아버지와 단 둘이 살면서 아버지로부터 삶에 대한 교훈이나, 생활 지도나, 미래에 대한 권면을 들어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인생의 미래에 대한 꿈이나 의미와 가치에 대해서 들은 기억도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방이 지저분해도 그렇게 사는 것인 줄 알고,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도 되는 것으로 알았고…. 아버지처럼 하루 하루 사는 것이 인생인 줄 알고 그냥 그렇게 살아왔다는 것이다. 삶의 목적도 방향도 없이…

 

상담소를 찾은 이후 달라진 것 중 하나는 방 청소를 하고 나서 개운한 기분을 자주 맛 본다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평소에 아버지로부터 가르침이 없어서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기본적으로 책을 읽어야 하는 것도 상담 선생님을 통해서 처음으로 듣는 것 같다며 쓴 웃음을 지었었다. 왜 사는지 의미를 묻지 않고 살다 보니 삶의 방향이 없어 엉망이 되어 있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가슴이 아려왔다. 그 청년을 상담하면서 인간의 삶의 의미를 찾아 가도록 돕는 상담 방법 중 빅터 프랭클의 의미요법에 대해서 다시 한번 읽게 되었다.

 

정신과 의사인 빅터 프랭클은 제 2차 세계대전 때 죽음의 수용소로 악명 높았던 유태인 포로수용소에 수감되어 인간으로 취급을 받지 못하면서 절망적인 상황에서 고통을 받았다. 기아와 추위, 죽음의 위험 가운데서 삶의 희망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나치스의 집단 수용소에서 프랭클은 동료들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왜 당신은 죽음보다 극심한 고통 가운데서도 삶을 포기하지 하지 않는가?” 자식을 만나고 싶어서, 자기의 재능을 그대로 파묻을 수 없어서, 자신의 경험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지 않고 죽을 수 없어서, 등등 살아야 할 이유를 대답 했다고 한다. 그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허무와 무의미한 수용소 생활 가운데서도 사람이 근본적으로 지닌 강한 생의 긍정을 발견했다. 그는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의미요법(Logotherapy)이라는 상담방법을 창안하였다. 포로생활의 체험을 통해 인간은 비극적인 상황 속에서도 의미를 추구할 때 살아남을 수 있으며 동시에 인간고유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의미요법은 인간의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는 생의 의미를 이끌어 내어 자신의 삶의 이유와 존재의 가치를 발견하도록 돕는 상답방법이다. 즉 왜 사냐고 물어 자기의 존재 의미를 찾게 하는 방법이다. 의미요법에 따르면 인간은 근본적으로 자기 자신의 심리상태에 관심을 갖는 존재가 아니라, 실현되고 충족되기를 기다리는 가능성을 지닌 의미와 가치의 세계를 향하는 존재인 것이다. 즉 인간은 과거적 존재가 아니라 미래적 존재라고 보았다. 자신이 이루어야 하는 존재의 미래가 가치가 있고 의미가 있을 때에 인간은 모든 고난과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시의 사회복지 관련 기관에서 노숙자들을 가정으로 돌려보내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많은 일을 한다고 한다. 노숙자들이 받은 상처와 아픔을 돌보는 정신과 치료, 상담치료, 자활훈련, 알코올 중독 치료, 등등 다양한 치료 방법을 동원해도 크게 변화지 않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들을 대상으로 인문학 강의를 했다고 한다. 노숙자들은 놓고 인생에 대해서, 철학에 대해서, 문학에 대해서 강의를 했는데 예상 못했던 결과를 낳았다고 한다. 처음에는 생의 밑바닥까지 떨어진 그 분들이 대학 강의실에서나 들을 수 있는 인문학 강의를 이해나 할까, 관심이나 있을까 싶었는데 의외로 ‘인생이란 무엇인가?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진리란 무엇인가?’라는 강의를 통해서 많은 노숙자들이 노숙자 생활을 청산하고 가정으로, 일터로 돌아갔다고 한다. 삶의 의미가 분명하지 않아서 좌절했고, 포기 했던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인문학 강의를 통해서 자신의 삶의 의미를 생각하게 되었고, 삶의 의미를 되찾자 삶의 용기가 회복되었던 것이다. 즉 인간은 상처와 아픔을 간직한 채로 살기를 원하지 않는 의미적 존재였다. 인간은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과 잃어버린 에덴을 회복하고자 하는 미래적 존재였기에   미래의 의미가 회복되자 현재의 고난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생긴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많은 분들이 삶의 가치와 의미를 배우지 못하고, 또는 잃어버리고 힘들어하고 절망한다. ‘이렇게 살아야 하나! 정말 내가 이것 밖에 안 되는가? 왜 살아야 하나!’"니는 왜 사노?"라는 질문을 던지면 대답을 회피하거나 생각해 본적이 없다고 말하는 분들이 적지 않다. 다행히 상담소의 문을 힘들게 두드리고 찾아와 의미 없이 살아온 시간들이 아깝다는 것을 깨닫고  왜 살아야 하는지 의미를 찾는 분들이 있다.

 

‘왜 사는가, 왜 상담소에 와 있는지’를 몰라서 멋쩍어 웃는 어색한 웃음이 아니라, 사는 이유가 아름답고 떳떳하고, 구태여 말하지 않아도 드러나고, 감추려 해도 천리 향처럼 알려질 수 밖에 없는 아름다운 삶, 사는 이유가 갖는 깊은 미소로 답할 수 있으면 좋겠다. 모두가 앞에 있는 희망을 찾았으면 좋겠다.

 

한 해를 시작하면서 올 한 해의 삶의 의미를 생각해본다. 먼저 나부터 삶의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이에게 밝은 미소로 답하고 싶다. 왜 사냐고 물을 때에 밝게 웃을 수 있는 내담 자들을 마음에 그리며 2011년 패밀리 터치의 상담소 문을 연다. 나도 모르게 입에서 잊고 있던 가요가 메들리로 뒤엉켜 흘러나온다. “사노라면 언젠가는 밝은 날도 오겠지 흐린 날도 날이 새면 해가 뜨지 않더냐.... 배를 저어가자 험한 바다 물결 건너 저편 언덕에 산천 경개 좋고 바람 시원한 곳 희망의 나라로… 내일은 해가 뜬다 내일은 해가 뜬다.”

왜 사냐고 묻거든  신나게 노래하지요! 가사가 뒤엉킨들 해가 뜨지 않으랴!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선한 양심을 가지라. ” 베드로전서3:15, 16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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