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 에세이                                        

 

글쓴이 임 옥순

 

아가야! 힘들지? 내가 못나 너를 이리도 힘들게 하는구나.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힘!)

 

길을 걷다가 파릇하고 생기 있어 보이는 연약한 새싹들이 내 눈에 띄는 순간에는 나도 모르게 발길을 멈추고 곁에 서서 한 참을 들여다보며 힘의 전율을 느끼곤

한다. 아마 약해진 내 몸이 살아갈 기운이 절실하게 필요했기에 창조주가 불어 넣는 그 생명력과 내 안에 남아 있는 그 생명의 힘이 서로 맞닥뜨렸나 보다. 이 순간에 나는 하나님의 생명력을 느낀다. 이런 상태를 상담에서 공감이라 한다.

 

상담 받으러 온 분들이 가끔“선생님은 저를 있는 그대로를 받아주십니다. 어떤 투정을 부려도 탓 하지 않고 이해해 주고, 제 말에 귀담아 주십니다. 선생님 앞에서는 긴장하지 않아도 되고 편안하기 때문에 자주 찾아오게 되네요. 선생님은 제 마음을 헤아려 주시는 군요.”라고 할 때 희망을 본다. ‘아하! 내가 공감적 환경을 만들어가고 있구나!” 심리학자 코헛은 ’공감적 환경의 상실은 개인을 무능력하게 만든다.‘고 했다. 유아가 아직 말을 하기 이전에 엄마의 충분한 사랑과 돌봄, 그리고 엄마의 공감을 경험하지 못해서 고통 받는 사람들을 상담 현장에서 자주 만난다.

 

1년 6개월 전부터 상담 받고 있는 한 30대 초반 능력 있는 직장 여성이 상사의 부당한 대우와 신분 문제가 걸려 있어서 제대로 항의 하지 못하고 7년 동안 참다가 우울증에 걸려 고통을 호소해왔다. 그런데 이런 사정을 한국에 계신 엄마만 이해 해주면 우울하지 않을 텐데, 자존심이 상할 것 같아 도저히 말은 못하겠고 가슴이 답답하다는 것이다. 금방이라도 “울음! 뚝! 그쳐!” 하면서 손가락으로 입을 막으려고 다가 올 것만 같은 엄마.... 그 분의 우울증을 더 심화 시킨 것은 직장 상사보다는 엄마라는 것을 상담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녀는 3살 때 일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제가 뭔가 내 마음대로 안 돼서 고집을 부렸나봐요. 그랬더니 저를 골방에 혼자 있게 하고, 말하자면 벌을 받은 거지요. 제게는 아주 긴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았어요. 어른들과 언니 오빠는 내가 골방에 있는 것조차도 잊고 자기들끼리 뭔가 이야기 하고 웃고, 저는 계속 울었던 기억만 나요.”

“ 그 때에 억울하고 분했겠네요. 세상에 혼자 버려졌다는 불안과 두려움이 있었을 텐데 ‘엄마가 뚝!’ 하면 울음조차도 울지 못하고, 외로움과 무서움까지 어린 작은 가슴에 묻어 두어야만 했으니 서러움이 얼마나 컸겠어요.”

“내 속에 그런 복잡한 감정들이 있을 거라는 걸 모르고 있었는데 짚어주시니 그 아픔이 느껴지는 것 같네요. 그래서 제가 가족을 벗어나고 싶어 유학까지 와서 한국에 돌아가지 않고 혼자 살고 싶은가 봐요. 가정을 이루고 싶은 자신감이 없어서 결혼은 아예 생각도 하지 않고 있어요. 직장에서는 제 역할이 크지만 제 능력에 만족감을 느낀 적이 없었는데, 그런 상처들이 깔려 있어서 그랬나요? 이제 와서 이런 이야기를 하고 나니 가슴이 후련하기도 하지만, 한편 마음이 아프기도 하네요. 요즈음 선생님하고 만나는 시간이 기다려져요. 저의 심정을 이해해주고 알아주니 살 것 같네요.“

공감을 경험하면서 그녀는 서서히 자신감을 얻었고, 이제는 한 달 또는 두 달에 한 번씩 찾아오는데 점점 얼굴이 밝고, 자신감이 있어 보인다. 그녀와 공감적 환경이 만들어지지 않았다면 우리의 상담관계는 이미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며, 회복이 더디었을 것이다. 공감은 생명의 호흡과도 같다. 자녀를 이해하고 반응하기 위해 자신의 공감을 사용하는 어머니처럼, 상담에서도 아픔과 고통을 안고 찾아온 그들을 이해하고 반응하기 위한 나의 공감의 능력은 그들에게 얼마나 도움을 주었을까?

JK 롤링의 작품 『해리 포터』시리즈의 작품성을 인정하던, 그렇지 않던 그의 영향력은 부인할 수가 없다. 이 작품으로 그녀는 부와 영국 여왕으로부터 작위를 받았고, 지난 5일 제 357회 하버드대 졸업식에서 축사를 하고 명예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녀는 축사에서 ‘상상력은 내가 직접 겪어 보지 못한 타인의 경험에도 공감할 수 있게 하는 힘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녀의 작품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은 그의 상상력에 사람들이 공감하기 때문이라 하겠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상상력이 세상을 바꾼다.“ 그런데 그녀의 상상력은 단지 머릿속에서 창조된 상상력이 아니다. “저는 20대 초반 런던에 있는 국제사면위원회(앰네스티) 본부에서 일했습니다. 세계 각국에서 고문당한 사람, 억울하게 사형당한 사람들의 사진과 사연이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독재국가의 비리를 전 세계에 폭로한 대가로 어머니가 사형을 당한 소식을 듣고 울부짖는 젊은이도 보았습니다.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얼마나 사악한 일을 저지를 수 있는지 저는 매일 보고 듣고 읽었고 악몽에 시달렸습니다. 반면 저는 그곳에서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인간의 힘도 볼 수 있었습니다. 안전하고 행복하게 사는 평범한 사람들이, 감옥에 갇힌 적도 없고 고문도 받은 일이 없는 그런 사람들이 어딘가에 있는지 알지도 못하고 평생 만날 일도 없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실패와 좌절, 그리고 이런 경험을 통해서 그녀의 공감력이 회복되었고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면 사람이 변화된다.“고....

 

드라마 대장금에 장금이 두창에 걸린 아이들을 고쳐보겠다고 만든 움막병사에서 장금이 안은 아이가 칭얼댄다. “장금 : (깨서는 아이를 이리저리 흔들어준다)아가야! 힘들지? 내가 못나 너를 이리도 힘들게 하는구나.” 당시 의학으로 두창은 고칠 수가 없는 병이었다. 그리고 움막은 병사로 쓰기에는 너무나 비위생적이고 열악하다. 그러나 그곳은 아픈 아이를 공감해주는 곳이었다. 공감이 두창을 고치는데 얼마 기여하였는지 알 수는 없지만 내의원 의원과 의녀들이 있는 동궁전보다 공감력 넘치는 곳이었다.

 

아직도 어둡고 깊고 탁한 내 마음이 공감할 수 있는 공감 능력을 획득하기 위해 상담가인 나 자신도 지속적인 개인 상담과 수퍼비젼을 받고 있다. 내 감정의 다채로운 영역에서 세밀한 체험으로 획득한 공감능력이나, 내 마음의 얼룩덜룩하고 울퉁불퉁한 면을 인정하고 수용하면서 타인의 그런 감정에 대해서도 공감하기 위해 더 노력하고 훈련해서 Family Touch 상담 사역이 가정을 공감환경으로 만들 수 있기를 기대한다.

 

**공감은 중립적이고 비판단적인 태도로 상대방의 내면의 경험을 함께 느끼는 것으로 모든 치료자에게 필요한 기본자질이라고 한다. 인간의 부정적인 속성에도 불구하고 위대하고 힘겨운 긍정의 태도를 견지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자신이 모두 그러하다는 자각과 그 자각을 바탕으로 하는 공감 능력 덕분일 것이다. 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공감 역량은 유아가 아직 말을 하기 이전에, 엄마와 아기 사이에 발생하는 상호 작용과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감정

....... 활짝 피어있는 꽃봉우리들이 나를 보며 더욱 크게 미소를 짓는 듯하다. 저! 어때요? 예쁘지요? 다가와 자신의 얼굴을 아니, 향기와 자신의 속 마음을 더 깊이 들여다 보라고 손목을 끌어 당긴다. 어떤 꽃은 상담소에서 만난 얼굴로, 어떤 얼굴은 전화 속에서 나눈 얼굴이, 어떤 얼굴은 자연스럽게 커피숍에서, 아니면 레스토랑에서.등등 만난 얼굴들 꽃 속에서 오버랩 되어 스냅사진처럼.... .

 

 

내면의 아이를 달래며

 

길을 걷다 수양 버드나무에 시선이 멈출 때 마다 가슴을 울컥하게 하는 한 여인의 풍경이 떠오르곤 한다. 온 가족의 정신적 아픔을 혼자서 감당해오다 지쳐, 숨조차 제대로 쉬기 힘들다며 그 동안 참아왔던 울분을 터뜨리기도 했었다. 아픈 가족들은 모든 걸 자신한테 의지하지만 자신은 말 한마디 속 시원하게 나눌만한 가족과 이웃이 없었다고 하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날이 갈수록 가족을 향한 말은 거칠어지고, 정신은 점점 혼미해지면서 가슴이 조여 올 듯이 점점 답답해지자 결국에는 상담소의 도움이 필요하게 되었다. 치료 받기에도 지친 가족들이 자신의 가시 돋친 말로 인해 더 힘들었을 거라 생각하니, 오히려 미안하다며 눈물짓던 여인! “이제는 저도 수양 버드나무처럼 부드럽게 살고 싶어요.”

만성적 우울감에서 벗어나려는 힘과 안주하려는 힘겨루기에서 버거워하는 연약한 한 생명의 몸부림도 머리를 툭 치며 스쳐 지나간다. 부모님으로부터 자신의 감정을 충분히 이해 받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한 것에 대한 내면화된 분노가 스멀스멀 표면화 되면서 불쾌하고 혼란스럽지만 우울 증세의 명쾌한 원인을 찾아가는 희망이 생겼다며 날마다 새 아침을 맞이한다는 여인! “물고기가 좁고 답답한 어항 속에서 넓고 자유로운 강물로 나온 것 같아요.”“따뜻한 목욕탕 안에서 나오면 귀찮고 힘 들 것 같아 그대로 앉아 있고 싶지만, 일단 나오기만 하면 뭔가 세상이 달라질 것 같아 움직여 보려고요.”

봄기운에 물이 오른 수양버들 가지들이 속마음을 알아차리고 간지렵혔을까? 어릴 적에 상상의 날개를 그림으로 펼쳤다는 그 어항 그림 속 물고기가 마음을 툭툭 치며 흔들었을까? 목욕탕에서 느낀 부드럽고 따뜻한 엄마의 손길이 주었던 평안이 마음을 스치며 흔들었을까? 좋은 엄마의 이미지보다는 나쁜 엄마의 이미지를 더 많이 더 깊이 기억해버리는 아이를 생각하니 내 가슴이 쏴아 해진다. 그들의 마음에 더 깊이, 더 가까이 다가가고, 더 간지렵히고, 더 흔들어대고, 더 쉽게 마음을 열게 하고픈데.....

“선생님! 울어도 돼요? 하나님 앞에서 저 매일 울었어요. 그렇지만 너무 답답해요. 가슴이 터질 것 같아요. 이러다 정신이 돌아버릴 것 같아요. 비밀 보장 되나요?” 마음 놓고 울지 못해 억장이 무너지는 한 생명의 복잡한 심정의 떨리는 입술은 군중 속의 고독과 외로움을 토해내는 것 같았다. 자신과 가족의 아픔을 회복하기 위해 상담소 문을 두드리는 동안 힘겨운 여정에 같이 있어주는 것만으로 자신과 가족을 돌 볼 힘을 얻을 수 있었다 한다.

상담을 통해 자신의 내면의 아이가 달래지면서 사랑 받지 못해 분노하는 아이는 다시 되놰야 하는 고통이 따르지만, 이제는 더 이상 아이가 아니라 성인이라는 현실로 돌아와, 깊이 팬 상처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의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내면 아이의 상처도 모자라 온 가족의 아픔까지 꽁꽁 싸매 고 상담소의 문을 두드리지만 한결같이 내밀한 자신의 마음 열기를 힘들어 하는 그들! 격한 분노를 마음 놓고 표현하지 못해 가슴을 후비면서도 목까지 올라온 감정과 눈물을 삼키다 돌아가는 분들이 오히려 내 마음을 더 아프게 했다. 울고 싶어도 곁에 들어 줄 어른이 없어 억압했던 내면 아이와 마주 앉아, 어린 아이의 아픈 이야기를 들어주면 그 때서야 마음 놓고 우는 울음이 자신을 위로하고 평안하게 했다 한다. 사람들이 자신의 슬픔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가까이 있는 분들이 그것을 받아주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고통을 나누다 보면 어느새 문제와 아픔과 고통들은 작아지고 돌덩이처럼 단단히 굳은 감정들은 누그러지면서 문제 해결의 가닥을 잡아간다. 내면의 아이가 조금씩 성장하기 위해 걸음마를 시도하다 보면 내면에 깊숙이 박힌 보석까지 발견하는 만족감도 얻게 된다. 자신은 물론, 가족, 이웃, 하나님과의 관계까지 회복할 힘을 얻어 하나의 새로운 자신의 풍경을 그려가는 것을 함께 경험한다.

오랜 동안 깊은 물속에 잠겨 있다가 올라온 듯, 깊은 늪 속에 묻혀있다 벗어 난 기분이라 표현하면서, 자신들의 새로운 풍경을 그리기 시작하기 까지는, 그들 곁에서 공감해 주고 지지해 주는 신뢰의 관계가 그들을 이끌어 주는 힘이 되었었나 보다.

하나님의 만져주시고 돌보시는 전율을 생생하게 느끼며 의식이 확장 되고, 관계가 확장 되고, 믿음이 확장되는 희망과 소망을 갖고 새로 태어나는 한 생명의 풍경을 패밀리 인 터치에서 그려 나갈 것이다.

 

상담을 받는 동안 일어나는 변화는 이런 것들이다. 처음에 내담 자들은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면서도 내면의 아이를 외면하려고 한다. 치료자의 공감을 받으면서 차츰 마음 문을 열면서 자신의 내면의 아이를 받아들이게 되고 마음이 편해지면서 울음이 나온다. 억압했던 울음이 풀리는 단계이다. 자신의 내면 이이를 달래는 단계다. 그렇게 내면 아이의 한/아픔/고통이 다루어지면 그 사람은 사람들과의 관계도 편해진다. 내면 아이가 더 이상 명령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의 내면세계를 수용하게 되니까 타인의 내면세계에 대해서도 수용적이 되어 서로 편한 관계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