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 에세이

 

상담가  임옥순

                   

공기놀이와 진달래꽃

 

 

   봄 기운에 물이 오른 나무마다 연녹색 새싹들이 자라고 꽃들이 어우러진 화사한 봄의 향기에 한껏 취해보지만, 내 속마음은 언 땅이 풀리고 생명들이 깨어나는  분주한 이른 봄을 붙잡고 싶었나 보다. 어느 계절 보다 빨리 지나가는 봄은 늘 헤어지는 아쉬움의 흔적을 매번 남기고 간다. 봄이 신부처럼 수줍어하며 천천히 걸어가면 좋으련만 밀린 숙제를 하듯 한 꺼 번에 피어나는 꽃들이 몹시 아쉬워 투덜거린다. 나의 뿌리 깊은 헤어짐에 대한 불안이 들킬 까봐 올해도 나는 보내고 싶지 않은 봄의 끝자락을 남몰래 붙잡고 있다.

 

어린 시절 어느 이른 봄 날 따스한 골목 담벼락 밑에서 친구와 둘이서 공기 놀이를 하다가 세상에 나 홀로 남은 기분을 어찌 할 바를 몰라 당황했던 기억이 자주 떠오르곤 한다. 같이 놀기로 약속했던 친구가 아버지의 손을 잡고 학교에 입학하러 간다며 공깃돌을 놓고 떠나가는 친구를 멍하니 쳐다보며 부러웠던 건지, 서러웠던 건지, 화가 났던 건지 덩그러니 혼자 담벼락 밑에 앉아 돌을 툭툭 치며 헤어짐에 대한 쓰라림을 고스란히 경험했었다.

 

또 하나의 아픔은 진달래꽃만 보면 중학교 때 헤어졌던 단짝 친구에 대한 그리움이 함께 밀려온다. 역시 어느 봄 날 단짝친구와 함께 학교 뒷산에서 진달래꽃을 한 아름 꺾어다 담임 선생님께 드렸더니 소녀처럼 해맑은 국어 선생님은 어디서 구하셨는지 투박한 옹기에 가득 담아 교탁 위에 올려 놓고 꽃을 소재 삼아 우리에게 문학 소녀의 꿈을 심어주셨다. 그런데 진달래꽃처럼 연분홍 꿈과 우정을 쌓았던 그 친구가 갑작스레 서울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 그 친구와 헤어지고 나서 내 가슴은 미어지는 것 같아 무척 힘 들었고, 허전하였고, 그리운 마음을 달래는데 시간이 꽤나 걸렸지 싶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혹 유아 때 엄마와 분리하는 과정에서 이미 분리 불안 경험이 더 먼저 였지 않았나 싶다. 그 때에 이별의 정한이 내 마음 속 깊이 나의 원초적 정서로 새겨졌나 보다. 그래서 봄 마다 봄이 다 지나가기 까지 소월의 시가 마음속을 맴돈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그렇게 소월의 시를 배우기도 전에 진달래는 봄마다 내게 봄의 따스함과 아린 그리움을 함께 간직한 꽃으로 머뭇거리며 다가왔다가 무거운 발걸음으로 멀어져 간다. 그렇게 매년 봄날은 내게 그리움을 남겨 놓고 가버린다.

 

   봄을 보내지 않으려고 애쓰다가 문득 한 내담자 여인이 생각나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무슨 일이든 한국에 계시는 엄마한테 확인을 받아야 안심하는 30대 중반 여성이 상담 중에 “선생님, 이제 엄마와 헤어질 수 있을 것 같아요.”라며, 눈물을 글썽였다. 그녀의 어머니께서는 먼 한국에 계시는데 헤어질 수 있다니 무슨 뜻일까? 늘 엄마와 티격태격 하면서도 전화를 하지 않으면 불안해 견딜 수 없어 전화기를 다시 들고, 또 그 때마다 지겹도록 둘이서 다툰다 했다. 어떤 일이든 엄마가 괜찮다면 어느새 안심해 버리고 엄마의 그늘 밑으로 숨어 의존해 버렸던 그녀, 늘 지적만 하고 숨 막히게 했다는 엄마… 가까이 있으면서도 멀리 있는 것 같았던 엄마… 따뜻한 말 한 마디로 인정해 주기를 그렇게도 인색했던 엄마… 그럴수록 징징대며 매달렸지만 밀어내고 떼어내려는 듯한 엄마로부터 전해지는 매정한 느낌을 받을 때마다 한 없이 벗어나고만 싶으면서도 한편으로 붙어있고 싶었다 했다. 의지하고 싶은 마음과 정 없는 어머니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두 마음의 갈림 길에서 무척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그녀는 모질게 마음을 먹고 엄마로부터 독립하려고 미국으로 유학까지 왔지만 심리적으로는 여전히 엄마를 벗어나지 못했다. 헤어져 있는 삶이 불안하여 전화기를 놓지 못하지만 인정 받고 싶은 욕구가 좌절 될 때마다, 분노만 더 커가고 우울해져 직장 일에 집중 할 수 없다며 괴로워했었다. 어린 시절 어머니의 잦은 거절로 커져버린 의존심으로 인하여 자신이 엄마 나이가 되었지만 여전히 엄마의 그늘 밑에 있고 싶은 욕구가 얼마나 컸는지를 차츰 알아가면서 엄마로부터 조금씩 자유로워져 간다 했다.

 

의존심은 모든 헤어짐에 대해 몹시 불안하게 만들고 힘들어 하게 한다. 자신이 자주적이고 독립적이라고 생각한 그가, 성인이 된 후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생의 모든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 왔다는 그가 상담을 받으며 인정하게 되었다.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한다”는 과도한 자주성이 의존성의 그림자/뒷면이라는 것을…. 나 역시 나의 내면에도 누군가에게 보호받고, 도움 받고 싶은 애정 욕구가 어마어마하게 억압되어 있다는 것을 상담을 통해 알게 되었다. 또한 나로부터 상담을 받는 자들의 의존심도 내 경험을 통해 쉽게 발견된다.

 

분리 불안으로 오랫동안 상담을 받아오다가 마무리 하는 단계에 이르렀던 분이 있었다. 나의 희미해진 의존심이 나를 충동질 하여 나도 모르게 헤어지는 기분이 어떤지를 묻게 되었다. 그분은 왠지 모르게 한편으로는 분노와 한편으로는 고마움이 함께 올라와 나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복잡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분노가 나를 향한 분노라기 보다는 그 분의 어린 시절에 돌보아주신 분들과의 분리 문제에서 형성된 뿌리 깊은 감정일 뿐이라고 정리 해주었다. 그 분은 자기를 돌보아주지 않아 서러운 감정만 남은 엄마로 기억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다정했던 어릴 적 기억을 자주 말하곤 했었다. 헤어짐과 분리에 대한 불안감은 “성숙으로의 떠나감”이기에 다른 이의 도움을 기대할 수 없지만 그것이 바로 의존성이 극복되는 지점이요, 우리가 진정으로 독립할 때 맞닥뜨리는 감정이라고 하겠다.

 

태중에서는 숨쉬는 것 조차 어머니의 숨결에 의존했으며, 태어나서는 스스로 숨쉬는 것과 스스로 걷는 것을 배우고, 엄마 손을 놓고 교문을 들어서는 최초의 공식적이고 의무적인 독립, 그리고 부모를 떠나 결혼하기까지 의존에서 독립을 향한 긴 여정이 인생의 소중한 과정이라 하겠다. 그런데 너무 이른 시기에 강요된 독립은 오히려 의존심을 키우고, 결국 독립이 늦어지는 꼴이 된다.

 

“떠날 때가 되면 어머니와 외할머니는 우신다. 외할머니는 긴 돌담을 돌아 서낭당 고개를 넘어갈 때까지 서 계시고 뒤돌아볼 때마다 빨리 가라고 손짓을 하신다. 한국 사람들은 대체로 이런 방식으로 이별한다.”(이어령의 한국인 이야기 <17> 달래 마늘의 향기 ① ) 나 역시 한국 여인의 이별의 한을 갖고 태어나 그렇지 않아도 이별이 힘든데 어린 시절 경험한 분리 불안이 부채질 하니 봄은 참 어렵게, 어렵게 내 곁에서 떠난다. 아니 내가 힘들게 보낸다.

  

 내년 봄은 봄으로 즐기고, 때가 되면 기쁨으로 보내고 싶다. 진달래꽃과 찔레꽃 향기를 선물로 준 봄에 감사하며 다가 오는 여름을 환하게 맞고 싶다. 상담을 마치고 헤어진다는 것은 의존심에서 벗어나는 자유를 향한 몸부림인 것처럼, 상담을 받고 패밀리 인 터치를 떠나는 분들이 뿌리 깊은 의존심이 극복되어 독립과 삶의 안정감을 찾기를 기대하며 봄의 끝 자락을 슬며시 놓는다. 내게서 자유를 얻은 봄날은 신랑처럼 활짝 웃으며 성큼성큼 간다.

 

 

**의존**

인간은 심리적 안정을 얻기 위해 의존할 대상을 필요로 한다. 엄마로부터 분리-개별화 단계가 자연스럽지 못했을 때에 불안감이 커지고 따라서 의존적 사람이 된다. 건강한 의존은 서로 돕고 교류하는 유익한 관계지만 병리적 의존은 서로의 발달을 가로막아 관계를 힘들게 한다. 우리는 자주 의존성을 우정이나 사랑과 착각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