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unseling Essays

​상담 에세이

친구여, 홍시는 보내지 말라!

몇 년 전, 설을 앞 둔 어느 날 한국에서 보낸 소포 한 상자가 도착했다. 40여 년 전 단발머리 중학교 시절, 기억도 가물가물한 같은 반 까까중 남학생이 보낸 곶감 상자였다. 그 후로도 미국에서 곶감 구경이나 하겠냐며 설 때마다 몇 년째 챙겨 보내준 곶감 덕에 세밑이 따스했다. 곶감 값보다 운송비가 배나 되는 것 같아 미안하지만 설이 다가오면 나도 모르게 곶감이 기다려진다.

가시여 안녕!

가끔 남편과 운동 삼아 산길을 걷다 보면 내 마음은 어느덧 길가에 줄지어 있는 산딸기 덤불에 가 있곤 한다. 해마다 7월에 마주 치는 산딸기가 얼기설기 엉켜 있는 가시덤불 속에서도 따가운 햇살에 볼이 빨갛게 익어 푸른 잎 사이로 수줍은 듯 고개를 내밀며 신기한 듯 세상을 구경한다.

 “손에 쥔 한 움큼/ 친구가 그립도록 무르익은 / 유년의 맛을 딴다.” 는 소양 김길자 시인처럼 나도 일곱 살 소녀의 아련한 맛을 한 움큼 따려다 멈칫한다. 소녀의 입술을 붉게 물들였던 그 시절, 새콤달콤한 그 맛에 나도 모르게 다시 손을 뻗는다. 야속하게도 볼이 빨간 새색시를 보호하는 호위무사 가시들이 날을 세우고 내 손을 다시 거부한다. 등산용 스틱으로 산딸기줄기를 밀치며 딸기를 따려다 문득  가시만 없다면 얼마나 좋을까 투덜거리다가 이내 생각을 접는다. 아니다! 이렇게 짓밟고 밀쳐내며 따먹는 사람들, 동물들이 있는 한 산딸기 줄기는 더 날카로운 가시를 더 많이 낼 테니까 말이다.

아버지가 있는 겨울 풍경

풍년이 들려나 올 겨울에는 유난히 눈이 많이 내린다. 오늘 같이 함박눈이 쉼 없이 내리는 날에는 세상이 그대로 한 폭의 한국화가 된다. 하늘이 새하얀 눈으로 마치 여백 가득한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 같은 그림을 그린다. 노송 한 그루, 나이 먹은 나무 세 그루 그리고 초등학생이 몇 줄 선으로 그린 듯한 길쭉한 초가 한 채뿐인 세한도 보다 더 한가롭고 단초로운 그림을 그린다. 그림 볼 줄 모르는 나 같은 문외한도 ‘세한도’를 보면 왠지 춥고, 쓸쓸하고, 고독하게 느껴져 ‘세한(歲寒)’이라는 제목이 딱 어울린다. 그런데 왜 이런 단순한 그림이 국보인지는 잘 모르겠다.

감자 꽃

   - 권태응 시 -

자주 꽃 핀 건 자주 감자

파보나 마나 자주 감자

하얀 꽃 핀 건 하얀 감자

파보나 마나 하얀 감자

얘들아! 칡 캐러 가자!

겨울과 봄이 서로 힘겨루기를 하는 2월 말, 아직은 겨울 끝자락이 남아 있지만 아이들은 좀이 쑤시고 몸이 뒤틀려 참을 수가 없다. 이때쯤이면 화롯가의 고소한 군밤 맛도, 부엌 아궁이에서 피식피식 소리를 내며 익어가는 군고구마의 구수한 냄새도 아이들을 집에 잡아두기에 힘이 부친다. 엄마 몰래 곡간에서 꺼내 먹던 정월 대보름 음식과 왕겨 속에 보관하던 사과, 배도 엄마가 알아차릴 만큼 줄어 더 이상 손을 댈 수가 없다. 그리고 유과, 약과, 오꼬시, 샘비과자도 이미 바닥이 나고 없다.

아~아! 그랬었구나!

  7년 만에 방문한 친정, 올 해 팔순이신 어머니는 미국에서 온 오십이 넘은 딸을 위해 백 개 남짓한 모시송편을 사랑 가득 가득 채워 초승달처럼 예쁘게 만드셨다. 친정어머니께서 멸치, 오징어, 뽕잎, 고사리 등등 바리바리 싸주신 짐을 챙기다 보니 밤늦도록 정성스럽게 만들어 주신 모시송편을 다 가지고 올 수가 없었다.

너도밤나무여 안녕!

가을이면 밤을 줍고, 은행을 줍던 어릴 적 나의 탐심이 아직도 가끔씩 발동한다. 바람이 불던 가을 날 이른 새벽에 바구니 들고 감나무 밑을 살펴 감을 줍던 추억을 어찌 잊으랴! 지난 가을에는 Sam 할아버지 집 뜰을 그냥 지나가지 못하고 커다란 나무 밑에 떨어진 윤기 나고 땡글땡글한 열매를 다람쥐들의 눈을 피해 주웠다. 종류가 다른 미국 밤일 줄 알고 껍질 채 톡 깨무는 순간 혀끝으로 전해지는 그 떫은 맛은 내게 실망스러움만 안겨 주었다. 분명 맛은 밤은 아닌데 모양은 영락 없는 잘 익은 밤이었다. 그때 미소를 지으며 뜰 앞으로 나오시던 Sam 할아버지께 여쭈었더니 horse chestnut이라 하셨다. 하지만 단어가 마음에 와 닿지가 않아 인터넷을 통해 조사 해보니 너도밤나무과에 속하는 마로니에 나무라고 되어 있었다. 너도밤나무? 그럼 나도밤나무도 있나?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첫눈 오는 날까지 손톱에 봉숭아 물이 남아 있으면 첫 사랑이 이루어 진데!” 어릴 때는 첫사랑이 뭔지도 모르면서 언니들을 따라 정성스럽게 봉숭아 물을 들이곤 했다. 봉숭아 꽃, 잎, 괭이밥 풀에 백반을 같이 찧어 만든 작은 덩어리를 손톱에 올려놓고 잎으로 둘둘 감아 실로 묶고 혹 손톱에서 떨어져나갈까 봐 손바닥을 쫙 펴고 조심스럽게 다녔다. 잠잘 때에도 조심스러워 편히 잠들지 못했지만 어느덧 잠이 들었다가 아침에 눈 떠보면 손톱에 하나도 붙어 있지 않아 속이 상했다. 나이가 조금 들어서는 은근히 첫눈 올 때까지 봉숭아 물이 남아 있기를 빌었다. 첫눈 오는 날까지 봉숭아 물이 손톱에 남아 있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첫 사랑이 결혼까지 이어졌으니 그 해 첫눈이 일찍 내렸나 보다. 애고! 첫 눈이 조금만 더 늦게 내렸으면 …

자운영꽃이 피기까지 내게 아직 봄은 오지 않는다. 울타리 밑에 노란 개나리가 손짓을 해도, 앞동산에 진달래가 꽃동산을 만들어도, 복숭아꽃이 문 앞까지 찾아와도 겨울의 끝은 내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다. 올해도 아직 피지 않은 자운영꽃을 기다리며 긴 머리 소녀 시절로 돌아가본다.

왜 사냐고 묻거든 웃지요

패밀리 터치 부원장님께서 지난 폭설이 내린 다음날 West Mountain에 오르셨다 한다. 산등성을 깎아낼 듯 몰아치는 겨울 바람에 어지럽게 흩날리는 눈발 속을 헤치고 무릎까지 빠지는 눈 위에 길을 내며 산에 왜 오르셨을까? ‘당신은 왜 산에 갑니까?’ 1924년 최초로 에베레스트 산 을 정복한 말로리가 원정을 떠나기 전 필라델피아의 한 강연에서 어느 기자가 질문한 내용이다. 이에 말로리는 ‘Because it is there(산이 거기 있어 산에 오른다)’라고 답했다 한다. 아직은 알피니스트들의 마음을 충분히 헤아리진 못하지만 지난해 등산화도 마련하고, 등산복을 사게 만든 동기와 비슷하다면 부원장님께서 웃으시지 않을까 싶다. 산을 오르는 이마다 이유가 다를 텐데 어찌 몇 단어로 설명할 수 있을까? 산에 가는 이유를 답하기도 쉽지 않은데 사는 이유의 답을 어찌 정리된 몇 마디로 답하겠는가? 

가을 호수에 잠긴 단풍잎처럼

올 추석도 어머니께서 만들어주신 고향 솔 냄새 나는 송편과 갖가지 모양의 떡을 구경도 못하고 이억 만리 미국에서 그리움과 함께 지나갔다. ‘쿵더쿵~  쿵더쿵 ~’추석이 다가오면 반갑게 들려오던 떡 방아 찧던 소리가 마음속에만 들려온 지 벌써 여러 해가 지났건만 어머니께서 떡을 만들던 정겨운 모습은 고소한 송편 맛과 함께 날로 더 선명해진다.

산딸기가 들려주는 애절하고 소중한 이야기

산길을 따라 붉게 익어가는 산딸기를 보니 “오나라 오나라 아주 오나/가나라 가나라 아주 가나/나나니 나려도 못노나니”라는 드라마 대장금의 주제곡 가락이 귓가에 들려오며 궁중궁궐이 오버랩 된다. 대비 마마 생신 축하연 및 최고 수라간 상궁을 뽑는 어선 경연대회 장면에서 장금이가 최고의 음식으로 산딸기정과를 만들게 된 슬프고도 깊은 사연의 대사가 떠올라 가슴이 싸하게 아려오며 눈물이 핑 돈다.

봄을 빼앗긴 이들과 냉이 국을 나누며

길고 우울한 겨울을 헤치고 봄이 왔지만 창문을 열고 봄을 껴안을 수 없는 이들이 있다. 친정 어머니 본 듯 반갑게 찾아 온 봄을 마음 가득 느끼며 봄을 빼앗긴 이들과 냉이 국을 나누며 봄의 따스함을 함께 나누고 싶다.

얼어붙은 저 가슴에 사랑의 눈물이 흐르게 하라

탁구공만한 크기에 단단하고 매끈한 아보가도 씨앗을 작은 화분에 심어 보았다. 과연 저 단단한 껍질을 뚫고 나오는 생명의 신비를 맛 볼 수 있을까? 혹시나 하고 물을 줄 때마다 흙 속을 들여다 보며 두 달을 기다렸던 어느 날, 작고 여린 새싹이 삐죽 고개를 내밀며 세상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그렇지만 칙칙한 흙 속에서 솟아난 새싹은 왠지 불안하기만 했다. 또 노파심에 과연 저 여린 새싹이 잘 자랄까? 그렇게 걱정하며 돌보는 사이 한 뼘 정도의 키에 작은 떡잎들이 나오고 곁에 있는 화초들과 키 재기까지 하면서 쑥쑥 자라고 있다.

양파와 행복으로 가는 눈물

올해는 매운 맛보다는 단맛이 진한 햇 양파를 즐겨 먹으면서 여름을 맞이했다. 어릴 때 먹어 본 그 담백함이 슬슬 입맛을 당겨 저녁 밥상에 자주 올려 놓는데 내 입맛만 즐거운 듯했다. 내 기억으로 더 달콤한 양파 속을 먹기 위해 한 겹씩 까다가 시원찮은 손 놀림으로 양파 몸 통만 너덜너덜 짓물러지고 톡 쏘는 매운맛에 눈물 흘리며 먹기를 포기하곤 했었던 양파...

공기놀이와 진달래꽃

봄 기운에 물이 오른 나무마다 연녹색 새싹들이 자라고 꽃들이 어우러진 화사한 봄의 향기에 한껏 취해보지만, 내 속마음은 언 땅이 풀리고 생명들이 깨어나는  분주한 이른 봄을 붙잡고 싶었나 보다. 어느 계절 보다 빨리 지나가는 봄은 늘 헤어지는 아쉬움의 흔적을 매번 남기고 간다. 봄이 신부처럼 수줍어하며 천천히 걸어가면 좋으련만 밀린 숙제를 하듯 한 꺼 번에 피어나는 꽃들이 몹시 아쉬워 투덜거린다. 나의 뿌리 깊은 헤어짐에 대한 불안이 들킬 까봐 올해도 나는 보내고 싶지 않은 봄의 끝자락을 남몰래 붙잡고 있다.

장작 타는 냄새 속에 담긴 사연들

퇴근 길 집 근처 골목길에 들어서는데 코 끝에 익숙한 고향의 향기가 진하게 와 닿았다. 어둑해질 무렵 우리 동네 이 집 저 집 굴뚝에서 밀려나오는 장작 타는 냄새로 마침 어린 시절 해질 녘 골목길에 들어 설 때 느낌처럼 온 몸을 감싸 안고 가슴 속에까지 타고 들어와 평온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내 마음은 어느새 장작 타는 냄새에 끌리어 어릴 적 고향 집 아랫목에 들어가 후닥닥 앉아버렸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아늑하고, 따스하고, 편안한 어머니의 품에서 한 참을 머물다 아랫목에 묻어 둔 밥 한 공기 먹고 서둘러 나왔다. 이 때 코끝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은 몹시 차가웠고, 겨울바람에 시린 내 두 발은 차가운 길목을 터벅터벅 걷고 있는 게 아닌가..

옥수수 반쪽에 담긴 미래

어느 날 어느 고등학교 교정에 몇 십 년 자란 커다란 아름드리 나무 몇 그루가 잘려 나가고 밑동만 훤히 속내를 비춰 주고 있었다. 나무의 나이테를 보니 상처 받은 흔적 없이 몇 십 년을 아주 건강하게 잘 자란 나무였음을 한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잘려나간 나무의 가지런한 나이테를 보면서 내 삶의 나이테를 생각해보았다. 내 삶의 나이테는 꽤나 굴곡이 많았던 것 같아 나무에게 부럽기까지 했다.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힘

아가야! 힘들지? 내가 못나 너를 이리도 힘들게 하는구나.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힘!)

 

길을 걷다가 파릇하고 생기 있어 보이는 연약한 새싹들이 내 눈에 띄는 순간에는 나도 모르게 발길을 멈추고 곁에 서서 한 참을 들여다보며 힘의 전율을 느끼곤 한다. 아마 약해진 내 몸이 살아갈 기운이 절실하게 필요했기에 창조주가 불어 넣는 그 생명력과 내 안에 남아 있는 그 생명의 힘이 서로 맞닥뜨렸나 보다. 이 순간에 나는 하나님의 생명력을 느낀다. 이런 상태를 상담에서 공감이라 한다.

상담 받으러 온 분들이 가끔“선생님은 저를 있는 그대로를 받아주십니다. 어떤 투정을 부려도 탓 하지 않고 이해해 주고, 제 말에 귀담아 주십니다. 선생님 앞에서는 긴장하지 않아도 되고 편안하기 때문에 자주 찾아오게 되네요. 선생님은 제 마음을 헤아려 주시는 군요.”라고 할 때 희망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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